시민단체 ‘직장갑질119’ 활동가들이 지난해 7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갑질금지법 리모델링’ 기자회견을 열어, 법 적용 범위 확대와 처벌 조항 신설 등 법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4인 사업장에서 일했던 ㄱ씨는 3년 동안 휴가를 거의 못 썼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연차가 없고, 구두로 한 달에 한번은 쉬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은 까닭이다. 사장 부인의 ‘갑질’도 심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욕을 하며 20분 동안 소리를 지르고 어깨를 밀친 적도 있다. 그는 얼마 전에 사장 부인에게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았다. ㄱ씨가 그만두지 못하겠다고 하자 사장 부인은 업무 잘못으로 인한 자진 퇴사라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할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수 있지만 자진 퇴사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 ㄱ씨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도 하지 못하고, 3년 동안 고용보험료를 냈음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ㄱ씨는 ”사장 부인의 갑질은 어디에 신고하나. 괴롭힘으로 퇴사했는데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나”라고 호소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6월에 접수된 제보다. ㄱ씨처럼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아 직장인 평균보다 갑질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직장갑질119가 20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들 평균 32.5%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36.0%로 전체 직장인 평균 응답을 웃돌았다.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17일∼23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알지 못하고 예방교육도 받지 못해 직장 내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응답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43.4%로 평균(31.9%)보다 높았으며, 공공기관(25%), 대기업(27.9%)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직장갑질119에 ‘5인 미만 사업장 갑질’ 제보는 잇따르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을 이용한 해고 사례가 많다. 6월에 직장갑질119 문을 두드린 교육업계 노동자 ㄴ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애초 공지한 근로조건과 다르게 일을 시킨 것에 대해 회사에 항의하니 당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안된다는 답을 받았다. 그는 “상시근로자가 5명이 넘는데, 증거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정말 답답하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을 피하기 위해 ‘사람 쪼개기’를 통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사례도 있다. 3월에 제보한 ㄷ씨는 30명이 넘는 ㄹ회사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ㅁ회사에서 일한다. ㅁ회사는 ㄹ회사와 탕비실도 같이 쓰고 회의실도 같이 사용하는데, 5인 미만 별도 회사로 운영된다. 그는 ㅁ·ㄹ회사 임원들에게 폭언과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수는 약 455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8%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뿐만 아니라 주 근로시간 상한(40시간)과 주 연장근로시간 상한(12시간), 연장·야간·휴일근로 시 통상임금의 50%에 해당하는 가산수당, 연차 휴가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도 아니다.
직장갑질119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앞에서 불평등한 2등 국민”이라며 “노동법 전면 적용이 어렵다면 직장 내 괴롭힘, 해고, 중대재해 등 만이라도 사업장에 최우선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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