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게 살기’ 건축론 실천…만석동 ‘기차길 옆 공부방’ 등 화제 공간 설계
“맹목적으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을 반성하고 싶어서 ‘불편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간경향 ‘의식주는 아날로그 방식이 본질’, 2008년 3월6일)
‘불편하게 살기, 밖에서 살기, 동선 늘려 살기’로 요약되는 ‘채나눔 건축론’을 주창해온 건축가 이일훈(후리 건축연구소 대표)씨가 2일 오후 5시14분께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세.
1954년생(호적상 1956년생)인 고인은 1978년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1984년 건축잡지 <꾸밈>을 통해 건축 평론가로 등단했다. 김중업(1922∼1988) 건축연구소 디자인팀장을 거쳐 자신의 사무실을 열었다. 경기대 건축전문대학 대우교수를 지냈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물처럼 한 공간에 모든 것이 집약된 집은 편리하지만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최대한 자연과 만날 기회를 주고 일상의 의미를 생각할 시간을 주자는 채나눔 방법론을 펼쳤다. 1998년 인천 동구 만석동 달동네에 저예산으로 만든 지상 3층, 연면적 45평의 ‘기찻길 옆 공부방’으로 건축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지역 사랑방으로 만들려고 마당을 둘러싼 회랑을 집어넣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밝맑도서관’, 재활용 포장으로 울퉁불퉁한 땅바닥과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분자로’를 담은 경기 가평군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그리고 청년사 등 출판사 사옥,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 등 다수의 종교 건축물을 설계했다.
경향신문에 ‘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등 칼럼을 연재했고, 환경산문집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2011, 사문난적), ‘뒷산이 하하하’(2011, 하늘아래), 건축산문집 ‘모형 속을 걷다’(2005, 솔), 건축백서 ‘불편을 위하여’(2008, 키와채) 등을 펴냈다. 건축주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경기도 남양주에 지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낡은 책으로 채운 거친 돌집)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제가 살고 싶은 집은’(2012,서해문집)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빈소는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203호실(3일 오전 10시 입실 예정)에 마련됐고, 발인은 5일 오전 4시30분. 연합뉴스
건축가 이일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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