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을 최초로 공개하는 게 11월 초쯤 될 것 같다. 그때부터는 배드파더스가 굳이 존재할 필요도, 명분도 없다.” 2018년 7월 시작된 배드파더스의 여정이 곧 막을 내린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해 온 민간 사이트 이름이다. “문을 닫는 게 꿈”이라던 구본창(58) 배드파더스 대표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채무자 얼굴, 이름, 주소를 배드파더스 사이트에서 알리거나, 알리겠다고 압박해 많은 양육비 문제를 해결했다. 신상공개를 한 양육비 채무자는 2000여명이다. 배드파더스 활동으로 890건의 양육비 문제가 해결됐다. 이 가운데 신상공개를 ‘사전 통보’하자 양육비를 지급한 게 690여건이다. 양육비 채무자가 신상공개를 큰 압박을 여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숫자다. 배드파더스가 해 온 이 일은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 이행법) 시행령 개정으로 13일부터 여성가족부 등 정부부처가 맡는다.
민간 사이트일 뿐이지만, 양육비를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배드파더스는 큰 힘이 됐다.
구 대표는 배드파더스 활동 전부터 필리핀에서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코피노)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한국인 남편과 아빠를 찾아 양육비를 받아주겠다며 더블유엘케이(WLK)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배드파더스 활동과 같은 맥락의 활동이다. 그런 구 대표의 사연과 활동 내용이 알려지자 많은 시민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배드파더스의 문을 닫는 게 보람찰 법도 하지만 그는 괴로운 감정이 앞선다고 했다. 갖은 협박과 고소 때문이다. “전화나 문자 테러는 일상이었다. 너무 괴로워 매일이 갈등의 순간이었다.” 살인 예고가 날아들기도 했다.
각종 소송전도 피할 수 없었다. 구 대표는 여러 건의 고소로 23번이나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가 받는 혐의는 대부분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다. 배드파더스는 제보를 받으면 반드시 이혼판결문, 조정조서, 양육비부담조사 등 법적서류를 먼저 확인한다고 구 대표는 설명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한 피해자가 코피노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양육비 지급 명령이 담긴 판결문이 있어야 사전 통보 및 신상공개 절차를 밟는다는 이야기다.
구 대표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1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검찰이 항소한 상태다.
양육비해결총연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를 비공개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접수된 것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 대표는 배드파더스 운영이 사적 제재라는 비판에 대해선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아동의 생존권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무책임한 개인의 명예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믿는다.” 구 대표는 “오이시디(OECD) 주요국 대부분은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간주한다. 한국에선 양육비 피해 아동 수가 100만명에 달하는데도 법이 미비해 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의 ‘2018 한부모 실태조사’를 보면 “양육비를 한 번도 지급받지 않았다”는 응답이 73.1%에 달한다. 그는 “법원에서 양육비를 지급하란 판결이 나와도 상대방이 주지 않으면 받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신상공개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배드파더스가 출범했다. 이를 두고 사적 제재란 비판만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달
13일부터는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공적 제재가 이뤄진다. 지난 6일 양육비 이행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여가부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명단을 공개할 수 있게 됐다. 여가부는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고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채무자의 이름·나이·직업·주소를 인터넷과 언론 등에 공개할 예정이다. 양육비가 5000만원 이상 밀린 채무자는 출국금지를 한다.
구 대표는 정부의 신상공개에 기대를 나타내면서도 “더 강력한 시행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양육비가 월 30만원으로 책정된 채무자는 양육비 불이행이 13년 이상 지속돼야 출국금지를 당한다.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편의를 과도하게 봐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단공개에 대해서도 “사진을 공개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특정되지도 않을 뿐더러 동명이인으로 인한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제대로 된 양육비 이행법이 정착하고, 배드파더스도 해산하면 구 대표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는 “내 꿈은 배드파더스가 문을 닫아도 되는 날이 오는 것이었는데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이제 더 큰 꿈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한 것 같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게 내 꿈”이라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