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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부대 시끄럽게 해” 군 성범죄 피해자 지켜줄 상담관도 ‘을’이었다

등록 2021-07-15 11:15수정 2021-07-16 07:38

사건 공론화 등 역할 다하려면 ‘예민한 상담관’ 꼬리표 달리는 이중고
“‘성가신 사람’ 찍히는 순간 밀려나”…계약직 신분에 고용불안 시달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성추행 피해 신고 뒤에 숨진 공군 부사관 사건은 성폭력 범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지원 하지 않고 ‘2차 가해’에 노출되게 하는 군 조직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1차적으로 기댈 언덕인 양성평등센터도 제 역할을 못 한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한겨레>가 만난 민간 출신 전·현직 성고충전문상담관(양성평등상담관)들은 센터 역시 군 조직의 일부로 상담관 또한 피해자들을 온전히 지원하는데 늘 벽에 부딪힌다고 입을 모았다. 양성평등센터의 독립성과 상담관들의 안정적 지위가 확보되야 군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적절한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 역할 하면…“부대를 시끄럽게 해”

ㄱ씨는 2015년 육군본부 양성평등센터(센터)가 문을 열면서 채용된 1호 성고충전문상담관이었다. 계약직 신분이었지만 군내 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물론 군 성평등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품고 근무했다. 그러나 자부심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ㄱ씨가 2018년 3월, 현역 군인이었던 양성평등센터장과 센터 소속 군인 등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한 남성 장교의 성희롱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예민한 상담관’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ㄱ씨는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는 센터 구성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사안을 무겁게 보고 정식 신고 절차를 밟고자 했다. 그러나 센터 관리장교에게 “나쁜 마음으로 (신고를) 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본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진급에 자유로울 수 없는 군인과 군무원 등 동석자들도 침묵을 지켰다. ‘상담관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별 것도 아닌 일이 이렇게 커졌다’는 얘기가 들렸다. 사건은 발언 당사자가 사과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2018년 육군 부대 양성평등상담관으로 채용된 ㄴ씨도 군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했는데 “부대를 시끄럽게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군간부가 혐의를 부인하며 “상담관(ㄴ씨)이 부대를 시끄럽게 해서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이란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해당 간부는 군사법원에서 혐의가 인정돼 처벌을 받았지만 부대 내 시선에 ㄴ씨는 움츠러들었고, ㄴ씨를 지지해야 할 센터는 침묵했다고 한다. ㄴ씨는 “처음에 센터는 이 일을 신고 절차를 밟지 않은 채 사건화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해 상담관으로서 피해자의 신뢰를 얻기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군내에선 내가 문제를 일으킨 것처럼 소문이 났다”며 “보통 가해자는 상담관이 부대를 들쑤셔서 사건화를 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센터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해고·전출 불안 안고 사는 ‘계약직’ 상담관

계약직으로 채용돼 1~2년마다 군과 재계약을 해야 하는 상담관들은 해고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산다. ㄱ씨와 ㄴ씨는 ‘유별난 상담관’으로 찍힌 뒤 양성평등센터나 소속 부대에서 정상 업무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본인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해고나 다른 부대로 강제전출이 됐다. 센터 소속 상담관으로 4년을 일했던 ㄱ씨는 2018년 사건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육군 본부에서 예하부대로 소속이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9년 새 양성평등센터장이 부임한 직후 이뤄진 일이었다. ㄱ씨는 센터에서 진행하는 회의나 간담회에서도 배제되는 등 크고 작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센터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지난해 4월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해고당했다. 센터는 근무 평정에 ‘미흡’ 점수를 주고 이를 근거 삼아 해고를 통보했다. 그러나 ㄱ씨는 “센터에서 ‘성가신 사람’으로 찍힌 순간 결국 군 조직 특유의 압력으로 밀려나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2015년 7월 양성평등센터 소속 상담관으로 처음 채용된 뒤 2년마다 재계약을 했던 ㄱ씨는 2019년 10월 소속이 변경된 임명장(오른쪽)을 새로 받았다. 맨 처음 받았던 임명장(왼쪽)과 비교해 소속만 바뀌고 최초 임명 시점은 그대로라 절차상 문제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5년 7월 양성평등센터 소속 상담관으로 처음 채용된 뒤 2년마다 재계약을 했던 ㄱ씨는 2019년 10월 소속이 변경된 임명장(오른쪽)을 새로 받았다. 맨 처음 받았던 임명장(왼쪽)과 비교해 소속만 바뀌고 최초 임명 시점은 그대로라 절차상 문제제기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ㄴ씨 역시 자신이 담당한 성폭력 사건 가해자에 의해 부대에서 ‘눈엣가시’로 몰린 뒤 고초를 겪었다. 2019년 이 부대 소속 한 부사관이 ㄴ씨의 성교육 내용 등을 문제 삼아 감찰실에 신고한 것이다. ㄴ씨는 “자신의 발언을 악의적으로 짜깁기하고 왜곡해 신고한 것”이라며 징계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1차 징계위원회는 정직 1개월 처분을 했다. ㄴ씨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다른 부대로 전보 통보를 받았다. ㄴ씨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항고하자 감봉 1개월로 징계는 감경됐다. ㄴ씨는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담관’이 된 뒤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ㄴ씨는 자신의 무고함를 증명하기 위해 징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군 인사·징계 업무를 담당했던 한 예비역 간부는 “군 내부를 모르는 상담관으로선 사건 절차 진행 과정에서 군을 상대로 방어권을 행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을’인 상담관 보호 필요…독립성 갖춘 성폭력 전담기구 제안도

ㄱ씨와 ㄴ씨 사례를 보면, 상담관들이 군의 구성원이 아닌 ‘경계 인물’이 되고, 감찰 대상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도 양성평등센터는 ‘우산’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계약직 신분으로 분기별 평가를 받은 뒤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상담관의 취약한 신분은 군과 센터에서 상담관이 ‘을’이 되기 쉬운 구조다. 2019년 1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군 성고충전문상담관 제도 발전 연구’ 보고서는 “남성주의적 군 문화에서 성고충 사건을 처리하는 상담관에 대한 적대감으로 대다수 전문상담관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이들은) 2년 재계약 시점과 이후 매년 고용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고, 지휘관과의 갈등 등의 문제는 고용 불안정을 더욱 가중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한 상담관도 “센터나 군에서 찍히면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담관들의 이직률이 높은 편이다”고 전한다.

이에 성고충상담관의 신분을 개선하거나, 상담관의 업무 지원 및 보호를 위해 양성평등센터가 독립성을 갖춘 기구로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한 전직 상담관은 “상담관이 (부대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센터가 국방부 산하 별도 기구로서 권한을 갖게 된다면 부대 내 상담관들의 영향력도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상담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국방부가 직접 상담관들을 채용해 관리해 달라는 것이다. 양성평등센터는 일·가정 양립 등 다양한 일을 맡고 있는데 성폭력 문제만 전담하는 식으로 업무를 분리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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