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기 용인시 이동읍의 한 곰 농장 철창 안에서 3살 난 반달가슴곰. 천호성 기자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에는 3살 난 반달가슴곰 17마리를 기르는 농장이 있다. 20㎡(6평) 남짓한 케이지들에 네댓 마리의 곰을 두고 웅담 채취 등의 목적으로 사육하는 ㄱ농업회사법인이다.
이 농장에서는 지난 6일 사육곰 2마리가 탈출했다. 용인시가 1주일이 넘도록 주변 야산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한 마리만 사살됐고 나머지 한 마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흔적도 나오지 않고 있다. 농장주가 이곳과 여주시에서 기르는 곰은 총 100여 마리로 환경부에 신고된 전국 사육곰 398마리 중 4분의 1에 달한다. 지난 13일 <한겨레>는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환경청) 직원들과 함께 ㄱ농장을 방문해 곰 사육 실태를 살펴봤다.
사육 환경은 열악했다. 축사는 20㎡ 넓이 철제 우리 4개 동이 ㄴ자 모양으로 늘어선 구조였는데, 무게 60kg 곰 17마리가 나눠 살기엔 비좁아 보였다. 그마저도 한 동은 칸막이로 나뉘어 곰 한 마리에 허락된 공간이 6㎡가 채 안 됐다. 환경청은 우리의 펜스를 2~3중으로 강화하라고 권고하지만 이 곳은 그렇지 못한 상태다.
13일 용인시 이동읍 곰 농장에서 몸에 분변이 묻은 반달가슴곰이 우리에 엎드려 있다. 천호성 기자
철창 주변으로는 곰 분변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우리는 곰 배설물이 내부에 쌓이지 않고 땅으로 떨어지도록 지면에서 50cm 정도 떠 있는 ‘뜬장’이었는데, 우리 아래마다 분변이 가득했다. 원래는 빗물을 뺄 용도로 만들어졌을 우리 앞 배수로에까지 분변이 차 있었다. 분변더미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달궈져 거품이 일었다. 사람들이 다가가자 철창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곰들이 일어나 괴성을 질렀다. 농장주 ㄱ씨는 “낯선 사람들을 보고 불안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곰들은 이내 무더위와 악취 속에 엎드려 숨을 헐떡였다. 몸이 가려운 듯 몇몇이 철창에 머리를 반복적으로 비벼댈 뿐 대부분 우리 바닥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날 농장을 찾은 조희송 한강유역환경청장이 왜 우리 내부에 곰들이 마시거나 몸을 씻을 물을 두지 않았는지 묻자 ㄱ씨는 “안에 물통을 두면 곰들이 다 엎어버려서”라고 답했다.
최근 곰 탈출 사고가 발생한 용인시 이동읍 ㄱ곰사육농장 전경.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직원들이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천호성 기자
조 청장 등 공무원들이 축사를 나서자 인근 주민 예닐곱 명이 이들을 막아서며 곰 농장 때문에 겪는 피해를 토로했다. 오염수가 지하수로 스며들거나 인근 개울로 넘치고, 반복되는 곰 탈출로 마을 150여 가구가 공포에 떨고 있다는 호소였다. 20년 넘게 마을에 살았다는 한 주민은 “최근 10년 간 ㄱ농장에서 곰 탈출 사고가 더 있었다. 평소에도 이 마을은 곰 위험으로 늘 비상상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이장도 “곰 농장 오폐수가 마을에 계속 고여 식수까지 위협하면 도랑을 파 인근 개천으로 방류할 수밖에 없다. 불법으로 곰을 증식하는 농장을 당장 이전하거나 문 닫게 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조 청장은 “최선을 다해 해결하겠다”고만 답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농장주는 “돈이 없어 시설을 보강할 수 없다”, “(시설 이전 등을 하려면)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용, 약용 곰 도축이 불법화된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없이는 환경청 요구대로 펜스를 2, 3중으로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할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농장주는 2016년 이후 5년 동안 곰 불법 증식, 시설 관리 미비 등으로 10차례 이상 적발돼 과태료 처분 등을 받았다.
그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985년 곰 사육을 시작할 당시엔 정부가 (농가 소득 증대 목적으로) 사육을 권장했다. 이후 10원도 (지원금 등을) 받은 적 없이 규제만 받았는데 어떻게 (당국이) 하라는 조치들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지원이 어려우면 3년 정도 사육 규제를 풀어서 농장주가 자체적으로 도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지금이라도 곰 사육 산업을 종식해 반복되는 동물 학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녹색연합 등의 자료를 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곰 사육을 허용하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뿐이다. 녹색연합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이번 곰 탈출 사고를 계기로 불법증식과 사육곰 산업 종식에 대한 환경부의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 또다시 환경부가 책임을 방기한다면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학대하는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정부는 2024년 임시 보호시설이 지어지면 해결하겠다는 말만 반복하지만, 지금 당장 계속되는 곰 탈출에 따른 위험을 막을 방법은 전무한 상황”이라며 “개발계획이 없는 빈 국유지 등에 임시시설을 마련해 불법 증식된 개체들에 대한 몰수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13일 경기 용인시 이동읍의 한 곰 농장 철창 안에서 3살 난 반달가슴곰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천호성 기자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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