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근처에서 어르신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낮 최고기온 33도로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경보가 내려진 18일 낮 12시, 서울 종각역 인근 길거리는 주말임에도 행인들이 발길이 뜸했다. 탑골공원 동문으로 향하는 옆길로 들어서자 큰길가에서 보이지 않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 홀로 앉아 연신 부채를 부치거나 커피 자판기에서 뽑은 3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날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준비한 380인분의 비빔밥은 배식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동났다. 몇몇 어르신들은 그늘도 없는 맨바닥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종이컵에 담긴 비빔밥을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탑골공원 출입구는 코로나19 확산세로 막아놓은 지 오래고, 경로당 등 실내 무더위 쉼터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대부분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갈 곳은 별로 없다. 주변에 쉴 곳이라곤 탑골공원 동문 옆 그늘에 놓인 간이 의자 10개 정도다. 급식소 관계자는 “덥다고 해서 어르신들이 집에 다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 오히려 코로나19로 청량리역 무료급식이 중단되면서 찾는 분들이 더 많아졌다”며 “마땅히 앉을 곳이 없다 보니 인근 지하철 역사 안에서 드시는 분들도 있어 관련 민원도 종종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거리 곳곳에선 폭염과 코로나19로 이중고를 겪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집에서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어르신이나, 야외 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과 땅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서울 동작구에서 사는 ㄱ씨(89)는 탑골공원 인근 그늘에 앉아 손수건으로 얼굴과 팔의 땀을 닦았다. 답답하다는 듯 마스크를 벗고 끼는 행위를 반복하던 ㄱ씨는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같이 사는 자식들도 주말 장사를 나가서 함께 얘기 나눌 사람이 없다”며 “더워도 종로까지 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매일 오전 9시에 탑골공원 인근으로 나온다는 ㄴ씨(83)도 “폭염이 걱정되지만 이곳에 와야 말동무도 만나고 놀 거리도 있다”며 “너무 더우면 하릴없니 지하철을 탈 때도 있다. 칸마다 냉방 세기가 다른 7호선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가끔 인근 서울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보는 게 낙이었는데 거기도 곧 닫는다고 하더라. 공원이나 극장이나 다 문을 닫으니 쉴 곳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서울 노원구청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돼있긴 마찬가지다. 한 배달노동자는 “낮에 배달하면서 틈날 때마다 음료를 사 먹게 되는데, 땀이 너무 많이 나니 화장실도 가지 않게 되더라”며 “간혹 얼음팩을 넣은 조끼를 준비한 라이더도 있지만, 폭염에 대비하는 라이더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 안 가건물을 기숙사로 이용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더위를 피할 수 없는 처지다. 외국인고용법에 따라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기숙사는 적절한 냉·난방 기구와 채광·환기 시설을 갖춰야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37도까지 올라가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온종일 땀 흘리며 일하면 기숙사 안에서 편하게 잠이라도 자야 하는데, 창문이 없어 통풍이 안 되고 햇빛도 들지 않는 기숙사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공론화되면서 일부 기숙사에는 에어컨이 설치됐지만, 전력 용량의 한계로 제때 쓰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김 목사는 “에어컨을 사용하려면 농업용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전기 용량이 부족해 가동이 안 되는 상황이 많다”고 설명했다.
18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확산세로 검사 대상자가 폭발적으로 늘며 임시 선별검사소 의료진도 폭염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시 중구 서울역 광장에 천막과 컨테이너 박스 5개에 놓인 임시 선별검사소에는 15명 남짓의 시민들이 손부채질을 하며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섰다. 의료진들은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비말차단용 안면보호 바스크와 비닐 방호복을 쓴 채 접수와 검체 업무를 하고 있었다. 특히 야외에서 시민들을 안내하는 두 명의 의료진은 틈틈이 더운 공기 속 이동형에어컨 바람에 머리를 내민 채 더위를 식혔다. 한 의료진은 시민들 발길이 뜸할 때면 어깨에 두르고 있던 땀수건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목 언저리를 닦았다. 잠시 장갑을 벗어 열을 식히려고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시민들의 질문에 응해야 했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무작정 선별검사소를 찾은 노숙인들을 돌려보내는 일도 이들 의료진의 몫이었다.
이날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임시 선별검사소 의료진과 이용자가 폭염으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낮 시간대 탄력적 운영 등의 대책 마련을 지방자치단체에 당부했다.
지난 13일 낮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한 배달 오토바이에 도시락이 가득 담겨 있다. 김혜윤 기자
이우연 장필수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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