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스랜딩의 엘크혼 슬로 습지에서 해달 한 쌍이 쉬고 있다. REUTERS
기록적인 폭우가 독일 등 서유럽을 강타해 적어도 170여 명이 숨지는 재난이 또 발생했다. 북미·시베리아·동북아시아 등에서 나타난 폭염과 폭우, 산불에 이은 사태로 지구촌에 기상 재난의 안전지대는 더는 없는 듯하다. 이렇듯 곳곳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기상 재난은 지구촌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뚜렷이 각인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만큼이나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시돼온 또 하나의 ‘생태위기’ 이슈가 있다. 바로 생태계 파괴, 곧 ‘생물다양성 상실’ 문제다. 이는 기후위기와 함께 오늘날 지구촌이 직면한 가공할 생태위기의 두 축 가운데 하나임에도 기후위기와 비교할 때 충분히 공론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구는 “수많은 생명이 함께 짓는 거대한 그물망”이라고 한다. 인류는 이 그물망 중 가장 강력한 종이지만, 동시에 숱한 생물과 공존해 지속해서 존속할 수 있다는 게 그동안 과학이 밝혀낸 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엔은 1982년 총회에서 제정한 세계자연헌장(World Charter for Nature)에서 “모든 형태의 생명은 유일하며, 인간에게 유용함 여부와 상관없이 존중돼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인류는 뭇 생명과 공존하는 길이 아닌 경제성장의 길 위를 무한 질주했다. 국제무역, 소비,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곳곳에서 도시화가 진행됐고 이는 유례없는 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와 복지(국가)를 선사했다. 하지만 풍요와 복지는 우리 삶을 지속시키는 자연을 훼손하는 대가를 치른 결과였다. 산림, 초지, 습지 등 중요한 생태계가 파괴되고 황폐화했다.
기실 생태계 파괴는 1992년 유엔 지속가능발전정상회의(리우+20)에서 합의한 핵심 의제 중 하나로 일찍부터 제기됐다. 이 회의가 마련한 ‘3대 협약’ 중 하나가 생물다양성 협약이었고 나머지 두 협약은 기후변화협약과 사막화방지협약이었다. 150개 정부가 서명한 이 협약(한국은 1994년 공식 가입)에서 세계 정상들은 당시 생물다양성의 손실은 인류의 문화와 복지, 나아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간주하고 이를 해결하자는 데 합의했다.
2020년 세계자연기금(WWF)이 펴낸 ‘지구생명 보고서 2020’는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야생생물 개체군 2만1천 개를 분석한 결과, 1970년부터 2016년까지 관찰된 포유류·양서류·파충류·어류의 개체군 크기가 평균 6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700년 이래 전세계 습지 가운데 약 90%가 사라졌다. 특히 기후변화로 뜨거워진 바다에는 산호초 폐사, 생물종의 지역 이탈 등 여러 악영향이 발생했다. 농경지, 산림, 담수, 목초지, 관목지, 사바나, 산악지대, 해양, 연안지대, 도시지역 할 것 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생태계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이 보고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를 압축한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건강과 자연의 건강이 긴밀히 연계됐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시스템인 자연이 심각하게 빠른 속도로 나빠져 결국 인간의 건강과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란 것이다. 물론 이를 불러온 원인은 성장과 이익을 위해선 생태계 파괴를 아랑곳하지 않은 인류의 무분별한 활동과 생활방식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꼬집는다. 보고서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이자 동시에 구조(SOS) 신호”라면서 “이 신호를 무시한다면 인류는 건강과 환경, 경제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위기처럼 생물다양성 상실에도 지구촌과 각국의 여러 대응이 전개됐다. 1993년부터 발표된 생물다양성 협약에 따라 열린 협약 당사국 총회는 14차례 이어졌다. 2021년에도 10월 중국 쿤밍에서 15차 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6월10일 ‘유엔 생물다양성 과학기구’(IPBES)와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역사상 최초로 ‘생물다양성과 기후변화에 관한 워크숍 보고서’를 공동 발표했다. 그동안 별개로 활동한 두 기구가 두 의제를 연결해 공동으로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잖았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상실은 본질적으로 탄소라는 공통 요소로 굳게 잇대어 있다. <탄소사회의 종말>의 저자인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기후위기는 생물서식지를 파괴하고 생태계를 교란하는데, 생태계가 (이렇게) 훼손되면 탄소를 흡수할 수 없어 기후위기가 악화한다”며 두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많은 이들이 탄소를 제거하는 일이 극히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지만, 전 지구적 생태계를 보전하는 과제가 이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은 많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라는 두 위기를 ‘생태위기’란 틀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대응하는 관점이 매우 절실하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기후위기나 탄소중립이란 좁은 렌즈로 보기보다 생태계 파괴로 논의를 확장해야 인류가 진정한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해야 탄소중립이나 에너지전환이란 응급처방을 넘어 생태계 파괴라는 만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의 홍윤희 사무총장은 “생물다양성 상실은 기후위기보다 국제 학계에서 연구가 아직 많지 많은데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다”면서 “하지만 생물다양성 상실은 인류의 보편적 웰빙 문제로 기후위기만큼 시급한 이슈”라고 말했다.
지구촌과 우리 사회는 이렇듯 심화하는 불평등과 저성장 등 복지국가를 뒤흔드는 여러 도전이 겹쳐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라는 이중의 생태위기를 더해 거대한 ‘복합 위기’에 직면한 유례없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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