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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가 김학순이다” 할머니의 용기…민들레 씨앗으로 퍼져 30년 뒤 더 큰 외침으로

등록 2021-08-11 17:27수정 2021-08-12 02:42

김학순 할머니 최초 증언 30주년 맞아
1504차 수요 시위, 세계연대집회 열어
“범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요구할 것”
11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학순의 용기가 세상을 깨우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의 주제로 제9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1인시위)가 열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성명서를 읽고 있다. 코로나19 4단계에 따라 1인시위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11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학순의 용기가 세상을 깨우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의 주제로 제9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1인시위)가 열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성명서를 읽고 있다. 코로나19 4단계에 따라 1인시위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와요. 내가 죽기 전에, 내가 눈감기 전에, 한번 말이라도 분풀이하고 싶어요”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살·1997년 12월16일 별세)는 공개 기자회견에서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라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역사적 사실’이기에 털어놓기로 했다”라며 50여년간 가슴 속 묻어둔 참담한 고통을 풀어내던 그는 끝내 “기가 막히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정부가 일본에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해야 합니다.”

현장에 있었던 김미경 전 <한겨레> 기자는 “김학순 할머니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실명을 내건 그의 증언은 한-일간 역사문제뿐 아니라 전시하 성폭력이라는 여성인권의 문제, 피해를 털어놓을수 없게 했던 한국 사회 가부장제 문화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언론들은 이것이 어떤 무게와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1991년 8월15일치 일간지들은 이 회견을 아예 빼놓거나 사회면 박스기사로 다룬 정도가 대부분이다.

30년 세월이 흐른 1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선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 하라!”는 1991년의 외침이 여전히 울려 퍼졌다. 김 할머니가 원했던 사죄와 배상이 지지부진한 탓에 고인의 한이 온전히 풀리지 않았을 테지만, 30년 전 김 할머니의 용기는 더 크고 단단한 외침이 되어 민들레 씨앗처럼 전 세계에 퍼지는 중이다.

이날 열린 1504차 ‘수요시위’는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30주년을 맞아 세계연대집회로 진행됐다. 6개국(한국·독일·미국·호주·일본·필리핀) 84개 단체가 “우리가 김학순이다”라는 구호 아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촉구했다. 시위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 맞춰 ‘1인 시위’ 방식과 온라인 연대발언으로 채워졌다.

11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학순의 용기가 세상을 깨우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의 주제로 제9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1인시위)가 열려 김 할머니 사진이 놓여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11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학순의 용기가 세상을 깨우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의 주제로 제9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1인시위)가 열려 김 할머니 사진이 놓여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참석자들은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전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정 서울대학생겨레하나 항공대지부장은 연대발언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한사람들의 용기는 세상을 깨웠고 수많은 사람이 역사를 배웠고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며 “할머니들과 함께 손잡고 싸워나갈 대학생들은 더욱 많아지고 언제든 평화로를 가득 채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외쳤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또한 “오랜 기간 침묵해야만 했던 국내외 피해자들이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에 미투(Me Too)로 화답했고 또 다른 김학순이 돼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했다”며 “일본 정부가 범죄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전 세계 피해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사과할 때까지 계속해서 요구하고 또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바라며 30년간 이어져 온 ‘김학순 정신’은 여성 인권과 존엄성 회복이 필요한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마음으로, 행동으로 지지하고 연대할 것이며 김학순님의 뜻을 이어받아 여성폭력, 성착취 문제 해결에 앞장서도록 하겠다.”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군대와 군대문화가 낳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목격하고 있다. 전리품마냥 객체화된 우리 여군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주시해달라.”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방혜린) 인권단체, 외국인, 학생들은 할머니들이 빠진 자리를 채우며 수요시위를 전 세계 여성 인권과 평화를 위한 운동으로 확대해나가고 있다.

한편, 수요 시위를 방해하는 이들의 ‘백래시(반발성 공격)’가 과거보다 한층 노골화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날 시위 현장에 나타난 극우 유튜버는 스피커를 틀고선 “(위안부들이) 강제동원 됐다는 증거를 가지고 와라. 증거를 가지고 오면 돈을 주겠다”며 현장에 난입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정의연 관계자는 “예전에는 친일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도 있었는데, 2019년 들어서부터는 위안부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시위 현장에 나타나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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