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소방서 상북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 이단비 소방교가 구급차를 소독하고 있다. 이단비 소방교 제공
경남 양산소방서 상북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이단비(31) 소방교의 하루는 오전
8시30분 시작된다. 주황색 구급대원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차량이나 장비가 제대로 준비됐는지, 앞서 특이한 출동은 없었는지 등 직전 근무자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으면 오늘도 코로나19와 싸울 전선에 나설 준비를 마친다. 이 소방교는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나 37.5도 이상의 발열 환자 등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
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코로나19 전담구급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담구급대가 생기기 전에도 이 소방교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관련 환자를 이송했다. 생활치료센터가 양산에 들어서기 이전에는 해외 입국자들을 보건소와 집으로 이송하는 일도 맡았다. 매일 아침 구급차를 소독하고 환기하며, 내부를 얇은 비닐로 씌우는 것은 익숙한 일상이 됐다. 출근 30분이 지난 오전 9시, 이 소방교가 일할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행정 업무를 틈틈이 보면서도 언제든 출동에 나설 수 있도록 대기해야 한다.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10분 만에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구급 출동! 구급 출동! 양산 상북구급, 코로나 생활치료센터 내 환자 병원이송 요청입니다. 마산의료원으로 환자 2명입니다.” 생각할 여유는 없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보호복과 마스크, 고글, 장갑, 덧신까지 5종 감염 보호복을 입고 구급차를 비닐로 싸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송 업무 도중에는 짬이 안 나기 때문에 화장실을 급하게 다녀온 다음 구급차에 올라탔다.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온 올여름, 보호복은 유난히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에어컨 냉기를 허락하지 않는 통풍이 되지 않는 보호복 안에서 축축한 땀이 몸 곳곳을 타고 내려갔다.
덥다는 생각도 잠깐, 이동하면서도 업무는 정신없이 이어졌다. 생활치료센터 관계자와 도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고 받으며 환자 인적 사항부터 이송할 병원의 상황까지,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소방교를 비롯해 3명의 구급대원을 태운 구급차가 어느새 생활치료센터에 도착했다. 리조트 앞에 줄지어 서 있는 구급차를 보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생각에 답답해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송할 환자들이 생활치료센터에서 나왔다. 혹시나 모를 감염 위험 때문에 바로 처치해야 하는 응급 환자가 아닌 경우 환자는 대원과 대면하지 않고 혼자 뒷자리에 탑승하는 것이 원칙이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1시간30분을 달려 경남 마산의료원에 도착했다. 코로나19 환자가 워낙 많다 보니 병원에 도착해서도 대기하는 시간이 많다. 긴 기다림 끝에 의료진에게 환자를 인계했다
. 환자가 내리자마자 구급차에 소독액을 뿌려 구석구석을 닦아냈다. 곧장 가까운 보건소나 소방서 감염관리실로 들러 2차 소독을 했다. 소독할 때는 구급차 내 에어컨을 끈 채로 소독해야 한다. 소독을 마칠 때마다 보호복을 갈아입으니 온몸에 열이 후끈 달아올랐다.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 내부가 비닐로 씌어 있다. 이단비 소방교 제공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지난 오후 1시다. 배가 너무 고픈 탓에 마음 같아선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지만 ‘확진자를 이송한 몸’은 소독을 마치기 전에는 자유가 없다. 출동한 지 4시간이 지난 오후 1시30분이 돼서야 119안전센터로 복귀했다. 세번째 소독을 마친 뒤 센터 내 식당밥을 허겁지겁 해치웠다. 오늘의 점심은 돈가스와 국이다. 다른 구급대원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따로 남겨둔 음식을 먹었다. 다 같이 밥 먹은 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탓에 코로나19 전담구급대도 일반 구급출동을 병행해야 한다. 점심 식사를 마친 오후 2시
관할 지역에서 승합차 충돌 사고가 일어났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경상 환자를 응급실로 이송하니 금세
2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소독을 열심히 해도 확진자를 태웠던 구급차에 일반 구급 환자를 태우는 것은 늘 걱정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소독과 환기를 철저히 한다.
쉴 틈도 없이 또다시 생활치료센터에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환자가 생겼다. 아침에 했던 업무가 다시 시작된다. 센터로 돌아오니 이미 퇴근 시간을 2시간 넘긴 저녁 8시10분이다. 이날 갈아입고 버린 보호복만 10벌이다. 짬이 나지 않아 처리하지 못한 행정 업무를 급하게 마무리했다. 샤워를 마친 밤 9시가 돼서야 이 소방교는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구급대원의 업무 강도는 이전보다 현격히 높아졌다. ‘서울시 소방관 COVID-19 근무환경 실태조사’(고려대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 연구팀, 서울특별시소방학교 소방과학연구센터) 결과를 보면 구급대원 719명 중 92.8%가 2019년과 비교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특히 코로나19 관련 출동의 경우 소독을 최소 세차례 해야 하는 등 방역지침을 지켜야 하고, 수용 가능한 확진자 격리병상의 경우 관할 지역을 벗어나는 곳에 위치하는 경우도 많아 이송 업무 한 건당 최소 4~5시간이 소요된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출근하면 구급차 안에서만 하루를 다 보내다가 가요. 출동이 없을 경우 대기하는 시간이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되죠.” 이송 때마다 감염성 질병을 가진 자와 접촉했다는 보고서도 작성해야 하는 등 행정 업무도 늘어났다.
하루하루 힘에 부쳐가지만 몸과 마음을 충전할 여유는 없다. 119안전센터에 있는 체력단련실은 폐쇄됐고 단체 훈련도 중단됐다. 코로나 감염 위험 때문에 헬스장을 갈 수도 없으니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거나 인적이 드문 강변길을 찾아 달리기를 하는 식으로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사적인 만남은 자제한 지 오래다.
함께 사는 가족들과 종종 갈등하기도 한다. 한번은 목욕탕 가는 것이 낙인 어머니에게 ‘제발 가지 말아달라’고 읍소했는데, 몰래 다녀온 걸 알게 돼 난감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 직업 때문에 남들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죠.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자가격리하게 되면 가뜩이나 힘든 대원들이 제 근무를 대신 서야 하니까요. 책임감으로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경남 양산소방서 상북119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 이단비 소방교가 구급차를 소독하기 전 주먹을 쥐고 있다. 이단비 소방교 제공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코로나19 전담구급대가 레벨디(D) 개인보호복을 착용한 모습. 박성대 소방위 제공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번 ‘레벨D’ 필수 착용해야
소방서로 ‘코로나19 의심 환자’ 구급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들은 서둘러 보호복을 입는다. 속장갑을 먼저 낀 뒤, 상·하의가 하나로 돼 있는 감염보호복을 펼쳐 하체를 넣고, 상체로 끌어올린다. 신발 위에 덧신을 신은 뒤 끈이나 고무줄로 고정한다. KF94 이상 또는 N95 이상의 마스크를 쓴 뒤, 보안경을 낀다. 그리고 노출되는 부분이 없도록 보호복에 달린 후드 모자로 얼굴과 머리카락을 모두 덮는다. 마지막으로 겉장갑을 한 겹 더 끼면, 출동 준비가 시작된다.
16일 <한겨레>가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코로나19 관련 지침 자료를 보면, 소방관들은 코로나19 관련 출동 때 가운, 보안경 또는 안면보호구, 장갑, 덧신, KF94 이상 마스크 등을 착용해야 한다.
코로나19 초기, 하루에 수차례 출동하는데 매번 보호복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소방구급대원들은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다. 전남 영광소방서 염산지역대에서 근무하는 박성대(47) 소방위는 “2년 전 처음 개인보호복을 갖춰 입을 때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잘못 입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늦어도 1분 안에, 빠르면 20~30초면 다 입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7~8월 폭염 속에 ‘물 샐 틈 없는’ 보호복을 갖춰 입어야 하는 현실은 이들에게 버겁기만 하다. 서울 중랑소방서 신준범(30) 소방교는 “통풍이 안되는 5종 보호복(레벨 D)을 입고 장시간 활동해야 하는 여름에는 30분 정도만 입고 있어도 속옷까지 다 땀으로 젖는다고 보면 된다”며 “심폐소생술까지 해야 하는 경우에는 체력 소모가 너무 심해서 온몸이 땀으로 젖고 보안경에 땀이 찰랑찰랑 고일 정도”라고 설명했다. 충남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구급대원도 “여름에 개인보호복을 갖추고 출동하면, ‘땀복’ 수준이다.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소방청은 지난해 6월 지침을 개정해 무더위에는 ‘간편 보호장비’인 수술용 가운, 페이스실드, 장갑, 마스크 등의 ‘긴팔가운 4종 세트’를 착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대상자, 병력을 알 수 없는 심폐소생술 대상자 등이 아닐 경우에만 가능하다.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출동하게 되면서 소방관이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소방관 COVID-19 근무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소방구급대원 719명 가운데 60명이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45명의 구급대원이 ‘개인보호장비 착용 시 시야 확보가 어려워서’라고 답했다.
채윤태 이우연 김윤주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