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여권 만료 4개월 남았는데…” 국내 아프간인들 절망 속 하루

등록 2021-08-20 04:59수정 2021-08-20 17:07

고향집 가족·자신들 처지 걱정 “매일 울며 식사도 하지 못할 정도”
“아프간 현지 변화 있을 때까지 한국 체류 허가해야” 지적 나와
16일(현지시각) 탈출을 하려는 아프간 사람들이 카불에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6일(현지시각) 탈출을 하려는 아프간 사람들이 카불에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저는 13일(현지시각) 카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지만, 23일 올 예정이었던 여동생은 아프간에 남겨졌습니다.”

19일 <한겨레>와 인터뷰에 응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 자매는 장학프로그램에 나란히 합격해 9월부터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일정 때문에 ㄱ은 15일(현지시각) 카불 함락 이틀 전에 비행기를 탔고, 언니 보다 늦은 비행기를 예매했던 여동생은 그사이 공항이 폐쇄되면서 한국에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지배를 받게 되자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아프간인들 사이에 절망감이 맴돌고 있다. 이들은 조국에 있는 가족 걱정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걱정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1990년대 탈레반이 점령했던 아프간에서 제대로 외출도 하지 못하고, 교육도 받을 수 없었던 ㄱ의 어머니는 딸들에게 다른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이주를 택했다. 파키스탄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학업을 이어갈 꿈을 품은 딸들은 1년 넘게 한국으로 유학을 준비했다. 장학프로그램에 합격하고, 여권과 비자발급을 위해 카불에 잠시 들렀던 ㄱ의 여동생과 어머니는 탈레반에 의해 점령된 도시에 갇혔다. 한국에 들어와 2주간 자가격리 중인 ㄱ은 “카불에 있는 여동생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연락해보니 매일 울며 식사도 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다. 외출이 두려운 상황에서 여동생과 어머니는 집에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다”고 토로했다.

국내 한 국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프간인 ㄴ은 “한국에 있는 아프간인 유학생들의 모임이 있는데 모두 고향에 있는 가족들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시로 외신기사를 확인하고 있다”며 “젊은 세대들은 직접적으로 탈레반의 폭력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이나 친척들로부터 전해 들어서 잘 알고 있다. 저마다 고향인 카불에 있는 가족들을 피신 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ㄴ은 카불 주민들이 파키스탄 접경으로 가 국경을 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데 어디서 탈레반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16일(현지시각) 수도 카불 공항으로 몰려들어 비행기 위에 올라가거나 활주로에서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16일(현지시각) 수도 카불 공항으로 몰려들어 비행기 위에 올라가거나 활주로에서 탑승을 시도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10년 전, 한국으로 유학 와 석사 학위를 받고 인천에서 일하고 있는 ㄷ은 탈레반 점령 이후 연락이 잘 안 되는 가족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아프간 서쪽 도시인 헤라트에 살던 부모들은 탈레반 점령 뒤 집을 버리고 이란 접경 지역으로 대피해 난민 캠프에 머물고 있다. ㄷ은 “카불이나 아프간 동쪽·남쪽에 대해선 그나마 호의적인 탈레반이 서쪽 도시 헤라트와 소수민족인 우리 하자라족은 늘 혐오해 박해의 대상이 됐다”며 “고향 친구 10여명은 그동안 탈레반의 크고 작은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 2명은 최근 1년 사이에 죽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ㄷ은 카불에서 교사로 일하는 여동생이 걱정이다. “언제 일자리를 잃고, 결혼을 강요당할지 몰라요.”

ㄷ의 여권 유효기간 만료가 4달 앞으로 다가온 것도 문제다. 아프간 현지로 돌아가 여권을 갱신·재발급하기가 사실상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ㄷ은 “한국에서 난민지위는 불안정하고 인도적 체류 지위는 노동권 제한되기 때문에 난민신청은 최대한 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 정부가 한국에 있는 소수의 아프간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머물 수 있게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레반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한국에서 난민 인정 절차를 밟고 있는 아프간인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고국에서 탈레반에게 토지를 뺏기고, 친형이 죽임을 당한 ㄹ은 2014년 한국에 와 난민지위를 신청했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미등록체류자가 됐다. ㄹ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돌아갈 곳이 완전히 사라졌다”며 “한국에서 머물 수 있게만 해달라”고 말했다. 앞으로 ㄹ처럼 난민신청 절차를 밟게 될 아프간인의 수가 늘어날 것으로 난민 인권 단체들은 내다보고 있다. 국내 거주하고 있는 아프간인은 2019년 기준 340명이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앞서 한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한 위기로 미얀마 국적 외국인에 대한 체류를 연장하고, 미등록체류자에게도 외국인 등록증을 돌려주고 체류할 수 있게 했다”며 “아프간 국적의 외국인(미등록체류자)에 대해서도 송환·구금을 중단하고 아프간 현지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때까지 한국체류를 허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