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원인불명’ 화재인데…SH, 임차인에 전액 보상·계약 해지 요구

등록 2021-08-24 11:35수정 2021-08-25 02:18

SH, 화재 복구비 3500만원 요구하고
빈집에 등기 보내 계약 해지 통보
권익위 “노후도 감안 복구비 과도해”
“서민 주거 안정 취지에 반한다” 지적
정씨 부부가 거주했던 에스에이치 임대아파트 내부.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정씨 부부가 거주했던 에스에이치 임대아파트 내부.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스에이치)가 ‘원인불명’의 화재로 전소한 노후 임대주택 임차인에게 수천만원의 화재 복구 비용 전액을 청구하고 계약을 해지했다가 “불합리하고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판단이 나온 뒤에야 이를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신청인 정아무개(60)씨가 제기한 ‘임대주택 화재 손해배상 이의’ 처리 결과를 보면, 권익위는 “화재 복구 손해배상액 산정 시 피신청인(서울주택도시공사)의 내부지침을 적용해 감가상각률을 적용하고 임대차 계약 해지를 철회할 것을 권고한다”고 지난 9일 의결했다.

서울 도봉구의 한 에스에이치 임대아파트(24.05㎡)에서 17년간 살아온 정씨는 지난해 10월 ‘원인불명’으로 판명 난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다. 반려견은 숨졌고, 가재도구도 모두 불탔다. 귀중품도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정씨가 복구 비용 논의를 위해 에스에이치 노원도봉센터를 찾자, 직원은 “복구비(변기·싱크대·도배·전선 복구 등)로 3500만원 정도가 나올 수 있다”는 말과 함께 각서 2장을 내밀었다. ‘귀중품 파손·분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임차인의 과실로 인한 화재일 경우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각서였다. 정씨는 “우리 과실이 아니고 복구 비용이 과하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에스에이치는 임대주택 화재 발생 시 공가(빈집) 제공을 포함해 임차인 임시 주거를 지원하는데, 정씨가 각서 서명을 거부하자 관련 지원을 하지 않았다. 정씨는 전세보증금(2100여만원)이 손해배상 금액으로 저당 잡혀 현재까지 택시 안,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아내는 친척집을 전전하고 있다.

정씨가 손해배상을 거부하자 에스에이치는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복구 협조 요청서와 임대차 계약 해지 등기를 불이 난 빈집으로 보냈다. ‘서류 발송을 위해 주소가 필요하다’는 에스에이치 요청에 정씨가 “찜질방에 살고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다”고 답변했지만, 모든 서류는 빈집으로 배송됐다. 에스에이치는 1월16일자로 임대차 계약 해지했고, 정씨 부부는 한 달이 지난 뒤 현관문 앞에 붙은 우편물 도착안내서를 보고 등기가 온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정씨 쪽은 “수차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문자 한 통조차 남기지 않은 건 너무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임대차 계약은 해지됐지만 정씨는 올해 6월까지 관리비를 납입하기도 했다. 에스에이치는 “임차인이 자진 명도할 때까지 관리비는 계속 부과하는 게 원칙이다”고 밝혔다.

정씨는 민간 업체 3곳에 문의해 1200만원 정도로 화재 복구가 가능하다는 견적서를 받아 올해 3월 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5개월간 조사 끝에 정씨 부부의 손을 들어주며 에스에이치에 합의를 권고했다. 에스에이치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제삼자의 판단을 받아내는 데 10개월이 걸린 것이다.

권익위는 의결서를 통해 “(아파트) 노후도를 고려해 화재 복구 수리비 전액을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화재 복구비 전액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차인의 경제적 여건, 경제활동 등을 고려할 때 손해배상액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돼 피신청인의 이런 행동은 서민 주거 안정 취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임대주택 화재 복구 손해배상액을 전액 보험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에스에이치는 원인미상 화재에도 임차인이 복구 비용을 부담한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며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는 입장을 권익위에 전달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주택) 점유자가 손해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방기하지 않았다면 소유자가 손해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 제758조를 판단 근거 중 하나로 내세웠다. 권익위 조사관 ㄱ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후도가 심해 재산상 가치가 없는 상황에서 불에 탄 물품을 새것으로 배상하라는 에스에이치의 태도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에스에이치는 또 ‘화재 원인이 임대인에게 있지 않는 한 모든 화재 사건을 임차인이 배상했나’라는 질문에는 “원칙적으로 임차인이 화재 복구 비용을 부담하도록 돼 있다”면서도 “화재 복구 과정에서 임차인과 협의해 복구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공사가 부담하는 사례가 존재했다”고 답했다. 이어 “화재 당시 임차인이 임시거주시설을 요청했으면 제공했을 것”이라며 “권익위 고충민원 처리결과가 통보됐으니 관할 센터에서 임차인과 추가로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1.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윤석열 “계엄이 왜 내란이냐”

김해공항서 에어부산 항공기에 불…176명 모두 비상탈출 2.

김해공항서 에어부산 항공기에 불…176명 모두 비상탈출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3.

‘내란의 밤’ 빗발친 전화 속 질문…시민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4.

‘강제동원’ 이춘식옹 별세…문재인 “부끄럽지 않은 나라 만들 것”

[단독] 명태균 “윤상현에 말해달라”…공천 2주 전 김건희 재촉 정황 5.

[단독] 명태균 “윤상현에 말해달라”…공천 2주 전 김건희 재촉 정황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