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했던 매장이 폐업하면서 급여를 받지 못했던 직장인 ㄱ씨는 관할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지만, 담당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조금만 기다려달라’라는 말만 듣고 꼬박 9개월을 기다렸다. 그런데 담당 근로감독관은 ㄱ씨의 사건을 처리하지 않은 채 명예퇴직해버렸다.
임금 미지급, 직장 내 성희롱·갑질 등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찾은 근로감독관으로부터 늑장처리, 합의종용, 2차 가해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16개 노동관계법에서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수행한다.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접수한 ‘근로감독관의 갑질’과 관련된 상담 사례 179건을 유형별로 분석해 5일 공개했다. 조사내용을 보면 근로감독관의 늑장처리가 73건(40.8%)으로 가장 많았고, 불성실 조사(59건·33%), 부적절 발언(31건·17.3%), 합의 종용(16건·8.9%) 등이 뒤를 이었다.
근로감독관이 가해자와의 만남을 추진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경우도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신고했지만,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것을 안내받았다. 다시 한 번 공문으로 시정명령을 내려주고 감독해달라고 요청하자, 근로감독관이 ‘그러면 당신이 직접 와서 근로감독관을 하세요!’라고 고성을 질렀다.” (직장인 ㄴ씨)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해 노동청에 신고했는데, 근로감독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가해자를 불러 대질조사를 요구해 제대로 조사받지 못했다.” (직장인 ㄷ씨)
직장갑질119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이 공인노무사 6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9일부터 일주일간 근로감독관 신뢰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근로감독관의 문제’를 묻는 말에 70%(42명)가 ‘노동법 이해 부족과 비법리적인 판단’을 1순위로 꼽았다. 직장갑질119 민현기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을 보면 근로감독관은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고 2차 가해를 예방해야 하는데 제보 사례를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질시켜 규정을 위반하고 보호받아야 할 진정인에게 2차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부족한 근로감독관 수를 꼽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안호영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1일 기준 근로감독관은 2421명으로 정원(3122명)의 77.5%에 불과했다. 안 의원은 “근로감독관은 노동자들의 억울한 일을 조사하고 해결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근로감독관 수가 부족하고 현장조사보다는 행정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근로감독관 역할에 다소 소홀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갑질119 임혜인 노무사는 “특별사법경찰관인 근로감독관은 성실한 조사를 거쳐 사건을 엄정히 처리하는 경찰관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근로감독관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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