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나단씨가 6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제공.
‘종교적 신념’이 아닌 ‘정치·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가 대체복무 신청이 기각되자 행정소송에 나섰다.
정치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자 나단(31)씨는 6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제 양심을 판단한 후에 기각, 즉 저를 대체역에서 떨어트렸다”며 “이제 이어지는 소송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저는 꼼짝 없이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씨는 이날 육군논산훈련소 입소를 거부하고 병무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병무청은 현역 복무 대상이 정해진 날에 입소하지 않으면 병역법 위반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한다.
기자회견문에서 자신을 ‘사회주의자’라 밝힌 나씨는 국가를 사랑하지 않기에 지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씨는 “대한민국의 지난 역사는 제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마찬가지”라며 “사랑하지 않는 존재를 목숨 바쳐 구할 의무가 제게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용산참사, 재벌 총수 가석방·사면 등을 언급하며 “국가는 오직 지배계급을 위한 통치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한 번도 지배계급이었던 적이 없는 저는 이 나라를 사랑할 수도, 지킬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올해 7월16일 나씨의 신념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대체복무 신청을 기각했다. 심사위원회의 결정을 놓고 나씨는 “국가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제 자유를 그나마 인정하며 의무를 버리지 않도록 해준 제도가 대체역이었지만, 그마저도 거부당했다”며 “결정문을 여러 번 읽었지만 기각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내 양심은 대체역을 하기에 충분한 양심이 아니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차별과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일부 심사위원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신청인에게 질문했는데, 이는 심사위원과 신청인의 관계가 위계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권침해였다”고 말했다. 나씨는 심사 과정에서 겪은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겠다고 밝혔다.
정치·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나씨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대법원은 개인적 신념에 따라 현역 입대를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시우(활동명·34)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대법원은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우씨는 “언제까지 누군가가 삶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담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이른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인지 아닌지 평가하고 판단해야 하는가”라며 “군사훈련을 거부하고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존엄을 지키고 존재가치를 실현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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