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해피인에서 주민들이 점심 도시락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대학동에 오게 된 중년층들은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으니 소득이 없고, 소득이 없으니 먹을 수가 없어요. 일자리가 없으니 나갈 일도 없어서 집에만 있게 되니 관계 형성을 안 하게 되죠. 건강, 특히 정신건강의 문제, 주거의 문제도 모두 다 얽혀 있어요. 종합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20년 가까이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서 봉사활동을 한 박보아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 대표에게 ‘고시촌 중년’은 새로운 숙제다. 박 대표는 2004년 대학동 ‘고시촌’에서 고시생들의 식사·교육 등을 지원하는 공동체 ‘젊은이의 말씀터’를 시작으로 무료독서실, 진로·심리상담 등을 지원하는 ‘청년인재지원센터’ 등을 운영해왔다. 그러나 사법시험 폐지 뒤 고시촌 청년들이 줄고 중년층이 늘어나자 2017년 10월 대학동 거주 중년층을 지원하는 해피인을 열었다.
1인 가구 중장년 및 노인을 지원하는 해피인은 문을 연 뒤부터 매일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식사를 준비하는 건 박 대표를 비롯한 8명의 자원봉사자의 몫이다. 13㎡(4평) 남짓한 건물이지만, 해피인을 찾는 중년들이 늘어 한 테이블에 10명 가까이 모여 앉아 식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코로나19 때문에 일주일에 2~3번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박 대표는 “코로나19 때문에 저희가 직접 집에 방문해 도시락을 나눠드릴 수도 있지만, 직접 해피인에 오게 해야 고시원에만 갇혀 있던 분들이 밖에 나오게 된다. 와서 말 한마디라도 섞어야 관계 형성이 되고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특히 고시촌 중장년들의 건강을 우려한다. 그는 “여기 오시는 중년분들을 보면 영양 상태가 안 좋아서 몸이 아픈 분들이 많다. 식생활 문제와 주거 빈곤, 운동 부족 등이 있다”며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도 많이 오시고, 우울증, 분열증과 강박 등을 겪고 계신 분들이 많다.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파악하기도 어려우니 병원에 잘 가지도 못하신다”고 말했다. 새롭게 유입된 중년들이 많지만 박 대표는 20~30대 대학동에서 고시를 준비하다 ‘고시낭인’이 된 이들도 눈길이 간다고 한다. “시험이 계속 안 되다가 사시 폐지 뒤 이제는 다른 직장도 얻지 못하고 있어요. 얘기를 나누면 똑똑한 분들인데 이제는 건강도 좋지 않고 기초생활수급자이신 분들도 많아요.”
박 대표는 해피인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고시촌 중년들이 서로 대화하고 교류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피인에 오면 모두가 식구가 돼요. 도시락을 받아 가는 ‘파란 가방’이 증표예요. 가방을 들고 있으면 길 가다가도 서로 인사해요. 여기서 사람들이 많이 밝아지고 웃고, 자기 얘기를 하고 어려움을 서로 부탁하고 물어봐요. 저는 이게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대학동 실태조사를 한 한국도시연구소는 고시촌 중년들의 거주 빈곤과 소통 단절 등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소는 △관악구 돌봄 사업에 비수급 중장년 취약계층 포함 △관악구 내 공공임대주택 확보 △편의시설과 커뮤니티 공간 제공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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