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트럭시위 차량이 정차해있다. 신소영 기자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된 트럭시위가 게임 이용자들과 시민단체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알리려는 노동자들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조처와 충돌하지 않는 ‘비대면 시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인력 동원 없이도 주목을 받기 쉬운 ‘가성비 시위’, 시위 주체는 보이지 않는 ‘외주화 시위’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1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일 스타벅스커피코리아 트럭시위를 주도한 직원(총대)은 시위에 앞서 트럭 비용 모금을 마친 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트럭시위의 장점을 부각하는 글을 남겼다. 스타벅스가 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한 지 22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 행동을 하며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총대는 “시위 당일 전국 매장 운영에 지장이 없으며, 근로자들의 과격한 시위(본사 점거 등)가 아닌 광고대행사의 트럭이 서울 시내를 순회하는 방식”이라며 “근로자의 정당한 단체행동권에 따라 시위 수단이 (과도하지 않고) 적합하다고 노무사로부터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진행된 블랙핑크 팬클럽의 트럭시위. 트위터 갈무리
스타벅스 트럭시위 사례는 앞으로도 노조가 없고, 회사의 보복을 우려하는 노동자들이 자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내부 불만을 효과적으로 대외에 전달하면서도 직접 거리 집회가 아닌 간접 참여 방식이라 회사의 눈치를 보는 노동자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벅스 직원들은 지난 7~8일 근로조건 개선 등의 요구사항을 담은 트럭을 운행시키면서 주목을 받고, 본사로부터 사과와 개선 약속을 이끌어냈다. 이틀간의 트럭시위는 1만9천명에 이르는 매장 직원 중 한명도 현장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모금액 330만원만 들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국내 노조 조직률이 12.5%에 불과한 환경에서 노조 없는 사업장 직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회사에 부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환영하고 응원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트럭시위는 2019년 아이돌 팬덤에서 소속사에 대한 항의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으면서 널리 퍼졌다. 주로 1t 트럭에 메시지를 담은 엘이디(LED) 전광판을 싣고 도심을 이동하거나, 소속사 앞에 정차시켜 언론의 보도를 끌어내는 식이다. 걸그룹 블랙핑크 팬클럽은 가수의 컴백과 방송 활동을 요구하는 내용의 트럭을 2019년 12월과 이듬해 5월 두 차례 소속사에 보낸 바 있다. 올해는 게임 이용자들이 과금을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 도입 등에 항의하며 게임업체를 상대로 여러차례 트럭시위를 벌였다. 게임업계 운영진이 사과하고 개선책 내놓는 등 일부 성과를 얻었다.
지난 3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에 반발하며 진행한 트럭시위. 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코로나19 방역 수칙과의 충돌을 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난 8월 전국신혼부부연합회가 예식장 거리두기 지침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트럭시위를 진행했다. 이때 참여한 한 회원은 <한겨레>에 “트럭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방역 수칙을 지키며 비대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돌잔치 업계 관계자도 트럭시위를 진행하며 언론에 “손팻말만 들고 혼자 서 있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거 같아, 큰돈 들여 전광판 트럭을 동원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이후 트럭시위가 눈에 띄게 늘었지만, 정작 관련 광고대행사들은 “코로나 수혜업체가 아니다”라고 손사래 친다. 트럭시위 대여를 진행하는 광고대행사 애드토탈 대표는 “팬클럽이나 게임 이용자들의 트럭시위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보다 대형 집회나 축제가 많이 줄어서 (무대를 비출 용도로 쓰이는) 트럭 대여가 현저히 줄었다”며 “경쟁 업체는 계속 늘어 기사 인건비를 제외한 트럭 대당 대여비도 하루 30만원까지 내려갔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