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장(왼쪽부터), 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 한현지 경희대학교 문과대 성평등위원이 지난달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사옥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9월27일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해산됐다. 10월8일 중앙대 성평등위원회가 폐지됐다. 그간 대학 총여학생회가 차례로 해산됐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라는 맥락에서 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코로나19로 텅 빈 캠퍼스에서 경희대 총학생회는 두차례 간담회만을 거친 뒤 34년 이어온 총여학생회 해산 안건을 투표에 부쳤다. 중앙대 성평등위 폐지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글이 발단이 됐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성평등위를 폐지해야 한다”는 글에 400여명이 동의했고, 학생대표자로 구성된 확대운영위원회 회의에서 폐지가 결정됐다.
이 ‘사건들’을 가까이서 바라본 송지현 중앙대 성평등위원장, 한현지 경희대 문과대 성평등위원, 윤김진서 범대학페미니스트공동체 유니브페미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2021년 온·오프라인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백래시가 대학가에서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은 것들을 지워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찬반 투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앞세웠으나 그 과정에서 필요한 토론과 숙의는 부재했다.
윤김진서 유니브페미 대표가 지난달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총여학생회·성평등위 폐지 이전 캠퍼스 분위기는 어땠나?
한현지(이하 한) “그동안 여성들이 성적 대상화를 당하지 않고 편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마련해온 공간들이 몇년 사이 빠르게 없어지더라. 중앙도서관 1층에 여학생 열람실이 있었는데 성차별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면서 학교본부에서 메일로 수요조사를 보내더니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송지현(이하 송) “중앙대에 입학한 2019년 성평등위원회가 각 단과대에도 성평등위를 설립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에브리타임에서 해당 사업을 두고 감히 페미니즘의 ‘에프’(F)를 꺼내냐며 거센 항의 글들이 올라왔다. 그래도 그때는 성평등위가 해당 사업에 대해 소명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평등위가 발언권이나 의결권도 없었고, 오히려 총학생회장이 익명의 발의자가 쓴 입장문을 대독하고 있더라.”
윤김진서(이하 윤김)
“에브리타임 내 백래시 주장은 꾸준히 있었지만 이번 중앙대, 경희대 사태의 경우 다수주의와 투표로 모든 걸 결정하려 한 총학생회도 일조했다. 페미니즘 같은 의제가 ‘페미 싫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될 수 있는 학생사회가 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정치인 발언, 기업·공공기관을 타깃으로 한 백래시와 연관이 있을까?
송 “상당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대 성평등위 폐지 안건 발의자가 경희대 총여 폐지와 여가부 폐지론을 근거로 가지고 왔더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경희대 총여 폐지를 멋대로 ‘여가부가 폐지돼야 하는 근거’라며 끌고 온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논거가 되는 느낌이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으니 에브리타임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이 과대대표되고, 이들이 발화권력을 가져가는 악순환도 커졌다.”
윤김 “총여학생회가 만들어진 1980년대 후반부터의 역사와 맥락이 있는데, 온라인 공간에서는 그런 맥락이 삭제되고 ‘갑자기 등장한 남혐 세력’으로 페미니스트와 총여를 바라보고 있다. ‘총여? 이거 여가부랑 같은 거 아냐? 여자만을 위한 단체?’ 이런 식이다.”
송지현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 등에서 위협받는다고 들었다.
송 “에브리타임에 내 전화번호와 신상정보, 에스엔에스 계정이 올라온 것은 물론이고 ‘성평등위원들을 총살해야 한다’는 글 등이 비일비재하게 올라온다. 요즘엔 줌을 통한 화상수업에서도 얼굴 드러내기 무섭더라.”
윤김 “이전에 총여 폐지 반대자들의 연서명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가면서 온갖 성희롱적인 댓글이 달렸다.”
대학에 성평등 의제를 다루는 기구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한 “학생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성폭력에 대해 공동체적 해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대학 내 학생공동체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학생들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보호해야 한다.”
윤김 “단 한명이라도 차별을 받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여성들이 대의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도 필요하다. 2019년에 성균관대에서 총여를 폐지하고 인권복지국이 생겼는데, 예비군 조식 사업은 유지하면서 무상생리대 도입 계획 질문에는 모든 학생이 수혜를 받지 못해 어렵다는 답이 돌아온 적이 있다.”
송 “학생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성폭력에 대해 공동체적 해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년 전 중앙대 영문과 교수가 학생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나왔을 때, 학교 인권센터는 징계위원회를 열면서 성폭력 대신 품위손상이라고 표현하는 등 미흡하게 대처했다. 이때 성평등위가 중심이 돼 피해자와 연대하는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모아 교수를 성폭력으로 징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해당 교수는 문제 제기 이듬해 해임됐다.)
한현지 경희대학교 문과대 성평등위원이 지난달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캠퍼스 페미니스트들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나?
송 “성평등위 폐지 등 백래시 세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계속 반복한 말이 ‘우린 도대체 누구랑 싸우고 있느냐’는 말이었다. 실체도 모르겠고, 반박하고 싶어도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투쟁에는 실체가 있다. 백래시는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오프라인에서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김 “동감한다. 백래시 세력은 ‘드러내지 않아도 우리가 더 세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백래시 세력에 맞서 말하는 것이 허공에 주먹질하는 섀도복싱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멈출 순 없다.”
사회·정리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시위 조직해 페미니즘 공격, ‘안티 페미’ 중계 돈 벌기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로 활동하는 백래시 세력은 이제 오프라인 시위를 조직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남성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신남성연대는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주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오프라인 집회를 열었다.
일부 유튜버들은 ‘백래시 장사’를 하기도 한다. 2030여성 집회나 기자회견 현장에서 조롱과 야유를 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지난여름 전국 7개 지역에서 백래시 규탄 시위를 조직한 2030여성 모임 ‘해일’ 대표 김주희씨는 “시위 전부터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시위에 찾아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등 협박에 시달렸다. 실제 시위 내내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고 외치거나 참석자들에게 물총을 쏘기도 했다. 이런 영상을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으로 내보내 후원금을 받는다”고 전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앎(닉네임)도 “지난해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했을 때 안티페미니즘 유튜버가 ‘꼴페미 맞불집회’라는 명목으로 길 건너편에서 트럭과 앰프를 동원해 막말과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이 모습은 유튜브에 실시간 방송돼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강연이나 웹툰 창작자들에 대한 공격도 여전하다. 백래시대응범페미네트워크가 지난달 19일 진행한 백래시 대응 온라인 집회에서 김희경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자문위원은 “최근에는 백래시가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돼 성폭력이나 불법촬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린 웹툰도 좌표를 찍어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포항공대 총여학생회가 기획한 디지털 성폭력 관련 온라인 강연회에 초청됐지만 남초 커뮤니티와 일부 남학생 반발에 강연을 하지 못한 하예나 전 디지털성범죄아웃(DSO) 대표는 “주변에 (여성학 관련) 강연을 하는 사람들이 압박을 받아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장예지 이우연 장현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