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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 중사의 ‘생전 메모’에 드러난 공포…“해코지 당할까 두려워”

등록 2021-12-20 15:34수정 2022-04-06 10:47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예람 중사 생전 메모 공개
“내가 여군이 아니었다면” 심경 밝혀
유족 “보복 협박 무죄 납득 안 돼”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 지난 11월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 지난 11월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5월 숨진 공군 이예람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장아무개 중사에게 징역 9년이 선고된 가운데, 유족이 이에 반발해 이 중사의 생전 메모를 공개했다. 메모에는 가해자의 2차 가해와 그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이 중사의 심경이 생생히 드러난다. 특히 군 재판부는 성추행 뒤 장 중사가 이 중사에게 보낸 문자에 대해 보복·협박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는데, 메모에는 이 중사가 해당 문자에 두려움을 느낀 정황도 드러난다.

20일 유족이 공개한 메모를 보면, 이 중사는 성폭력 피해를 겪은 뒤 장 중사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봐 두려웠고, 장 중사의 연락을 원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 중사는 메모 ‘6. 가해자의 사건 이후 언행에 대해서’ 항목에서 “나는 이 이후로 장○○ 중사와 마주칠까 봐 무섭고 어떤 해코지를 당할까 봐 무서운데 그리고 연락도 일절 오지 않기를 원했지만 장○○ 중사 아버지가 문자로 ‘장 중사 명예롭게 전역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직접 알려주지도 않은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서 2차 가해를 했고, 장○○ 중사는 연락 및 접촉을 하지 말라고 한 사람들의 당부를 어기고 피해자에게 본인의 자살을 예견 가능한 사과 문자를 보냈음”이라고 적었다. 이어 이 중사는 “이때 나는 문자를 받고 깜짝 놀라 반장님에게 전화해 문자 내용을 얘기하고 그 사람의 자살을 대비해 초동 조치를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림”이라고 밝혔다.

지난 17일 재판에서 이 메모가 공개됐지만,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해당 문자에 대해 “사과의 의미를 강조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보복 협박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메모의 한 대목에서 딸이 해당 문자메시지에 실제로 공포심을 느꼈다는 점이 드러난다”며 장 중사가 이 중사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보복 협박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9년이라는 낮은 형량을 내린 것과 보복 협박을 무죄로 판단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딸은 생전에 가해자의 연락을 두려워하고, 특히 죽을 것이라는 연락에 놀랐다는 메모를 남겼다. 가해자가 연락해 죽겠다고 하는 것은 사과가 아닌 협박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메모에는 이 중사가 사건을 무마하려는 주변의 회유와 2차 가해에 괴로워한 사실도 드러난다. 이 중사는 메모에서 “(장 중사가)‘나는 이번 일로 전역을 할 거고 선처를 바란다’라고 했다는 것을 ○○○중사를 통해 들었음. 자신은 이번 일을 다 책임을 지고 혼자 조용히 전역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음”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 중사는 “그 사람이 전역을 하든 말든 내가 신경 쓸 것이 아님. 그 사람이 조용히 전역한다면 앞으로 그 사람은 아무런 법적 제재도 없을 것이고 나만 사고가 일어났던 현장 속에 남아 그것을 매번 떠올리며 괴로워할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이며, 내가 선처를 할 일이 절대 아님”이라고 말했다.

이 중사는 피해를 겪은 뒤 심경을 적은 ‘7. 그 날 이후 나의 생각’ 항목에서도 “2차 가해는 제 가슴 속을 헤집어 놓습니다”라고 했다. 이 중사는 “그 날만 생각하면 제 자신이 혐오스럽고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나 소리를 지를 수 있지 않았냐는 질책을 들을 때면 그냥 제 자신이 싫습니다. 잘못은 그 사람이 했는데 왜 내가 질책을 들어야 하는 것인지 괴롭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중사는 “내가 여군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남자였다면 선 후임으로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나는 여군이어서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힘들고 번거롭게 하는 것이며 왜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뼛속부터 분노가 치밉니다”라고 말했다. 이 중사는 또 “이 모든 질타와 비난은 가해자의 몫인데 왜 내가 처절히 느끼고 있는지, 사건화가 되어 공론화가 되고 느껴질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 어린 말들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라고 메모를 남겼다.

김윤주 기자 kyj@hani. co.kr

▶바로가기: 군법원, 공군 이중사 성추행 가해자에 징역 9년…유족 반발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023751.html

※<한겨레>는 △성범죄 사건 등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 △기사에 피해자가 부득이 등장해 해당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기사의 댓글 창을 닫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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