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④]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
1000만원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사람, 부동산 매매 경험자를 지인으로 둔 사람
“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히 냅두죠?”
1000만원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사람, 부동산 매매 경험자를 지인으로 둔 사람
“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히 냅두죠?”
게티이미지뱅크
■ 지난 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기 어려운 부동산 피식자들의 생태계에서 한국말이 어눌해 취업이 안되던 중국 동포는 중국 사람에게 땅을 팔 수 있는 능통자 대접을 받았고, 코인 투자 실패자와 만년 구직자가 서로를 ‘차장’으로 부르며 “돈이 없지만, 땅은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기사 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2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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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사를 포함한 수많은 기획부동산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일대. 여기엔 중장년 여성들이 다수 일하며 땅을 팔거나, 직접 사고 있었다. 장필수 기자는 10월27일부터 11월6일까지 ㅎ사에서 영업 차장으로 근무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왜 저한테 거짓말하셨어요?”ㅎ사에서 영업4부 ‘장필수 차장’으로 일하는 동안 회사의 판매 토지를 사라고 유도한 박 부장과 진 차장에게 결국 물었다. 퇴사 뒤, 그들이 말한 개발 호재와 수익률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하나둘 확인하면서다. 진 차장은 “필수씨가 가장 구매할 가능성이 크니 옆에서 챙기라는 부장 지시를 받았다”고 어렵사리 말문을 연 뒤 “나이가 젊으니 미리 땅을 사두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친언니 명의로 계약금을 걸어놓았다”며 기자에게 권했던 토지의 경우 “계약금 150만원 중 100만원은 박 부장이 빌려준 돈”이라고 했다. 박 부장은 ㅎ사의 ‘바지사장’이기도 하다.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그는 “이 회사 대표를 하는 이유는 기획부동산을 오래 다녀본 입장에서 ㅎ사를 믿고, ㅎ사에서 분양한 토지만큼 (많이) 바뀌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업용 개발 호재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장을 가봐서 알고 (모두)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회사로 방문하면 서류로 보여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부장은 직원들에게 스스로 땅 부자라는 점을 과시하곤 했다. 하지만 주변에선 ‘땅만 있을 뿐 집 한 채 없는 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 역시 사실상 피해자일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였다. 퇴사 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심혜선씨는 지난 11월17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친구의 친언니가 기획부동산에 사기를 당해 수차례 ‘거기 빨리 나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ㅎ사가) 그린벨트 안에 수백명씩 들어가 있는 그런 땅을 판 게 아니지 않으냐”며 “회사가 서민들을 위해 그렇게 쪼개서 판다는데,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보단 시세보다 비싸게 사더라도 5년 뒤에 오르면 이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 호재들의 한계를 설명해도 심씨가 매료된 부동산 불패 신화는 굳건해 보였다. 기획부동산은 한 해에도 여러차례 이름을 바꾸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ㅎ사 또한 올해 ‘ㅍ○○’이라는 사명을 쓰다 변경했다. 구인공고 또한 사명을 달리해 여러건 올린다. 취업플랫폼 ‘잡코리아’에 ‘부동산 영업’으로 검색하면 채용 공고만 2600여건이 뜬다. 불법 떴다방 식으로 영업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 이들의 실제 규모는 추산하기도 어렵다. 다만 업계에선 “서울 강남에만 300여곳 될 것”이라 추정할 뿐이고, 지난 3월부터 이달 12일까지 기획부동산 관련 불법행위로 경찰이 단속해 검찰에 송치한 이들만 528명(서울·경기 관할만 403명, 76.3%,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이른다. 전국의 기획자들이 더 많은 ‘심혜선들’을 자극하고, 어떤 ‘심혜선들’은 마침내 각지의 기획부동산으로 유입될 것이다. ㅈ사에서 만난 중국동포 하씨는 내게 첫인사처럼 대뜸 “꿈이 없어요? 왜 이런 일 해요?”라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퇴근길 ‘기획부동산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을 전수해주곤 했다. “이런 회사 다니려면 질문이 없어야 해.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해.” 그런 그가 마지막 기자로서 만났을 때 했던 말은 이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히 냅두는 건가요? (땅이 거래될 때마다) 세금 많이 받아서 그래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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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5회는 27일 <한겨레> 홈페이지에 공개합니다.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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