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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자녀들 남겨줄 거 있어?” ‘시한폭탄’ 같은 땅을 사고 파는 사람들

등록 2021-12-23 13:59수정 2021-12-23 15:33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④] 기획부동산 취업 취재기
1000만원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사람, 부동산 매매 경험자를 지인으로 둔 사람
“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히 냅두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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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하기 어려운 부동산 피식자들의 생태계에서 한국말이 어눌해 취업이 안되던 중국 동포는 중국 사람에게 땅을 팔 수 있는 능통자 대접을 받았고, 코인 투자 실패자와 만년 구직자가 서로를 ‘차장’으로 부르며 “돈이 없지만, 땅은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기사 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4276.html

1000만원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사람, 부동산 매매 경험자를 지인으로 둔 사람, 언변이 좋고 사교성 있는 사람, 시간이 많지만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사람….

기획부동산 업체에 결국 50~60대 여성들이 머무르는 이유다. 이들은 30~40대에 견줘 상대적으로 돈도 시간도 있는 반면,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ㅎ사는 임원 3명을 제외한 모든 부장과 (젊은 인력을 혼합해 구성한 영업4부를 제외한 모든 부서의) 차장이 50~60대 여성이었다. 마음씨 좋은 주변의 어머니 같은 분들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시한폭탄’ 같은 땅을 팔고 또 사는 것이다.

실제 ‘어머니’ 차장들의 영업 무기는 모성애이기도 했다. “자식들 남겨줄 거 있어?”, “자녀들 위해서라도 땅을 사두셔야지요”와 같은 말은 논리에서 영업이 막힐 때마다 내뱉는 단골 멘트였다.

온라인 구인광고로 주로 유입되는 30~40대들과 달리 50~60대 여성들 대부분은 지인의 소개나 ‘벼룩시장’ 구인광고 등을 통해 기획부동산을 접한다. “집에서 할 것도 없으면서 여기 와서 돈이나 벌어. 퇴근하면 바로 3만원 준다니까”, “여기 오면 부동산 배울 수 있어. 보험보다 여기가 훨씬 많이 벌어”와 같은 달콤한 말들에 낚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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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이들이 식당 일이나 청소 일을 하다 앉아서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한다. “이 나이에 식당, 청소 빼면 부동산이나 보험뿐이야. 나는 원래 보험을 했는데, 이것도 모집을 해야 하다 보니 힘들더라고.” 영업4부에서 함께 일한 진선영(가명·61) 차장은 ㅎ사에서 먼저 일하던 지인을 통해 발을 들였다. 지인이 보험 영업을 했던 진 차장에게 상품 하나를 가입해주며 건넨 말, “시간 나면 회사에 한번 들러 설명이라도 들어봐.” 평생 남들 앞에서 어깨 펴고 살아본 적 없는 5060 여성들은 기획부동산에서 들은 정보를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빠른 정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욕망을 넘어 인생에서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정보라는 걸 믿게 됐을 때 그들은 더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다. 번듯한 건물에 있는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게 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부동산 투기가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게 된 현실에서 오히려 성공할 거란 믿음으로 임한다.

다단계 영업 특성상 토지를 사고팔 신입 차장이 계속 공급돼야 하기에 기획부동산은 인력 공급책 직원을 따로 둔다. 진 차장은 바로 영업4부의 인력 공급을 맡았는데, 자신이 끌어들인 신입 차장이 계약을 따내면 판매 대금의 0.2%를 수수료로 챙겼다. 박 부장과 진 차장이 함께 장단을 맞춰가며 내게 그랬듯 신입 차장들에게 토지 매입을 권유한 이유이다. 진 차장도 이미 ㅎ사가 파는 평택, 당진, 화성 땅을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구입해 갖고 있었다. 영업을 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입사했지만, “회사에서 월급 받는데 눈치 보이고 사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로, 판매단가가 높을 땐 박 부장과 절반씩 갹출해서까지 땅을 샀다. 회사가 지난 9~10월 판매했던 당진시 석문면 일대 임야까지 친언니 명의로 계약하고 계약금(150만원)까지 걸어뒀는데, 이는 진 차장이 지인들 상대로 영업할 때 옹근 재료가 됐다. “(가격이 오르는) 확실한 땅이라 나도 언니 명의로 계약했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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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동산에서 일하며 땅을 사들인 이들의 미래는 무엇일까. 정화순(가명·66)씨는 2018년 1월부터 8월까지 기획부동산 ‘ㅈ경매’에서 ‘정 과장’으로 일하며 본인 명의로 1억3436만원어치의 땅을 구매했다. 보험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 했다. 두 아들도 어머니 정 과장의 권유로 각각 6380만원, 4044만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세 모자는 경기도 일대와 대전, 원주, 세종에 있는 개발제한구역 내 임야, 보전녹지지역, 농림지역을 총 2억3860만원어치 샀다. 노후 준비 겸 시작한 일이었다. 이혼 뒤 아이 셋을 홀로 키웠던 옆팀 직원은 7억원을 투자했고, 여든이 넘은 친정아버지에게 땅을 판 직원도 있었다.

“회사가 이상하니 환불받자”는 아들의 전화 한통이 파국의 시작이었다. 처음 회사는 “그런 회사 아니고 모두 해명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필요하면) 환불이나 보상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회사는 돌변해 “소란을 피우면 영업방해죄로 고소할 것이고, 법으로 하면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다. 정씨와 아들은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회사 임원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검찰의 기소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ㅈ경매 쪽은 “정당한 영업 방식이었고,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몫”이라며 혐의를 부인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획부동산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멍청하게 속아서 땅을 샀나’ 말하지만, 하루종일 그들의 말에 세뇌돼 있으면 어쩔 수가 없어요. 이들은 바퀴벌레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또다른 지능화된 사기 수법을 계속 만들어낼 겁니다.” 이 사건으로 남편과 이혼한 정씨는 울분에 찬 심경을 문자로 대신했다.

ㅎ사를 포함한 수많은 기획부동산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일대. 여기엔 중장년 여성들이 다수 일하며 땅을 팔거나, 직접 사고 있었다. 장필수 기자는 10월27일부터 11월6일까지 ㅎ사에서 영업 차장으로 근무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ㅎ사를 포함한 수많은 기획부동산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일대. 여기엔 중장년 여성들이 다수 일하며 땅을 팔거나, 직접 사고 있었다. 장필수 기자는 10월27일부터 11월6일까지 ㅎ사에서 영업 차장으로 근무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왜 저한테 거짓말하셨어요?”

ㅎ사에서 영업4부 ‘장필수 차장’으로 일하는 동안 회사의 판매 토지를 사라고 유도한 박 부장과 진 차장에게 결국 물었다. 퇴사 뒤, 그들이 말한 개발 호재와 수익률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하나둘 확인하면서다.

진 차장은 “필수씨가 가장 구매할 가능성이 크니 옆에서 챙기라는 부장 지시를 받았다”고 어렵사리 말문을 연 뒤 “나이가 젊으니 미리 땅을 사두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친언니 명의로 계약금을 걸어놓았다”며 기자에게 권했던 토지의 경우 “계약금 150만원 중 100만원은 박 부장이 빌려준 돈”이라고 했다.

박 부장은 ㅎ사의 ‘바지사장’이기도 하다.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그는 “이 회사 대표를 하는 이유는 기획부동산을 오래 다녀본 입장에서 ㅎ사를 믿고, ㅎ사에서 분양한 토지만큼 (많이) 바뀌는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업용 개발 호재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장을 가봐서 알고 (모두)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회사로 방문하면 서류로 보여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부장은 직원들에게 스스로 땅 부자라는 점을 과시하곤 했다. 하지만 주변에선 ‘땅만 있을 뿐 집 한 채 없는 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 역시 사실상 피해자일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였다.

퇴사 뒤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심혜선씨는 지난 11월17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친구의 친언니가 기획부동산에 사기를 당해 수차례 ‘거기 빨리 나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ㅎ사가) 그린벨트 안에 수백명씩 들어가 있는 그런 땅을 판 게 아니지 않으냐”며 “회사가 서민들을 위해 그렇게 쪼개서 판다는데, 은행에 돈을 넣어두는 것보단 시세보다 비싸게 사더라도 5년 뒤에 오르면 이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 호재들의 한계를 설명해도 심씨가 매료된 부동산 불패 신화는 굳건해 보였다.

기획부동산은 한 해에도 여러차례 이름을 바꾸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ㅎ사 또한 올해 ‘ㅍ○○’이라는 사명을 쓰다 변경했다. 구인공고 또한 사명을 달리해 여러건 올린다. 취업플랫폼 ‘잡코리아’에 ‘부동산 영업’으로 검색하면 채용 공고만 2600여건이 뜬다. 불법 떴다방 식으로 영업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 이들의 실제 규모는 추산하기도 어렵다. 다만 업계에선 “서울 강남에만 300여곳 될 것”이라 추정할 뿐이고, 지난 3월부터 이달 12일까지 기획부동산 관련 불법행위로 경찰이 단속해 검찰에 송치한 이들만 528명(서울·경기 관할만 403명, 76.3%,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이른다.

전국의 기획자들이 더 많은 ‘심혜선들’을 자극하고, 어떤 ‘심혜선들’은 마침내 각지의 기획부동산으로 유입될 것이다.

ㅈ사에서 만난 중국동포 하씨는 내게 첫인사처럼 대뜸 “꿈이 없어요? 왜 이런 일 해요?”라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퇴근길 ‘기획부동산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을 전수해주곤 했다.

“이런 회사 다니려면 질문이 없어야 해.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해.”

그런 그가 마지막 기자로서 만났을 때 했던 말은 이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거 사기라는 것 다 알면서 왜 가만히 냅두는 건가요? (땅이 거래될 때마다) 세금 많이 받아서 그래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5회는 27일 <한겨레> 홈페이지에 공개합니다. www.hani.co.kr
장필수 김완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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