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시인이 2월1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백기완 선생 영결식에서 추모 시 ‘백발의 전사에게’를 낭송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신년 특별사면·복권 대상에 포함된 송경동 시인이 24일 “박근혜 사면복권에 들러리나 치장물이라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송 시인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나는 박근혜 사면을 위한 구색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이 같은 입장문을 올렸다. 그는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복직을 촉구하는 ‘희망버스’ 집회 등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복권 대상에 포함된 송 시인은 “박근혜 사면을 위한 명분이나 들러리로 사면복권 대상자가 된다는 건 부끄럽고 민망하며, 열 받는 일”이라며 “변호사님들께 반납하고 거부할 수 있는지 자문을 받아보려 한다”고 썼다. 그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었다던 시민촛불항쟁은 다시 철저히 농락당하며 희화화되고 말았다. 박근혜 사면복권을 정점으로 적폐청산의 요구는 결국 적폐복권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송 시인은 박 전 대통령과 같은 날 결정된 자신의 복권이 ‘희망버스’ 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비판했다. 송 시인은 “2011년 희망버스 운동을 박근혜 사면복권의 들러리로나마 써먹으려 하다니 미안하지만 하나도 고맙지 않고, 도리어 분노가 치민다”고 썼다. 그는 “2011년 희망버스의 복권은 나와 몇 명의 사면복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시 300여 분의 이름없는 사법탄압 피해자들이 있었다”라며 “그분들의 복권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나의 복권은 도리어 희망버스 운동에 대한 또 다른 왜곡과 폄훼이자 모독”이라고 썼다. 송 시인은 “더더욱 2011년 희망버스를 이끌었던 해고자 김진숙 동지에 대한 명예회복과 복직을 이 정부는 끝내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송 시인은 정부가 노동계 인사 및 시민운동가의 특별사면·복권이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노력과 화합의 차원”이라고 밝힌 데 대해서도 반발했다. 송 시인은 “노동 존중을 위해서라는 멘트도 가당찮다”라며 “이미 끝나버린 집행유예에 대한 뒤늦은 복권 필요치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김수억(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을 비롯한 1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기소 철회와 사과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이 정부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송 시인은 이어 “알량하고 기만적인 복권 도리어 치욕이니 다시 가져가길 바란다”며 “김진숙이나 복직시키고, 비정규 악법이나 폐지하고, 종전선언에나 나서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이나 제대로 제정하고, 차별금지법 제정하고,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하고, 내 친구들인 비정규직 노동자 17명에게 언도한 22년6개월 구형이나 취소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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