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회 내용은…
언론사 최초로 기획부동산에 입사해 ‘장 차장’이 된 장 기자. 그 세계엔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도 팔 수 있는 땅이라며 당당하게 영업하자는 이들이 있다. 땅도 ‘당당’해보였다. 길도 없는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임야가 “지대가 높아 홍수가 와도 안정적이고 농작물 수입이 없기에 세금이 적고 흙을 파 팔 수도 있다”고 홍보되고 있었다. 부동사 기획자들은 우리가 파는 땅이 “가수 태연 가족이 산 땅보다 좋은 땅”이라며 유혹과 압박을 병행했다. “돈 없는 사람들도 땅으로 돈 벌 수 있게 하려고 쪼개서” 판다는 오늘의 기획부동산과 과거의 기획부동산을 비교해봤다.
☞기사 보기
“피해자 A와 2010년 2월10일 이 사건 임야 중 429m를 7400만원에 분양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 2010년 6월경까지 피해자 73명으로부터 합계 54억4천만원을 편취하였다.”(서울중앙지법 2015고합697 판결, 2018년 1월12일 선고)
“2015년 7월15일 피해자 B로부터 토지대금 명목으로 회사 명의 계좌로 5292만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해 2016년 10월11일까지 피해자 32명으로부터 합계 12억275만원을 교부받았다.”(울산지법 2018고단3893 판결, 2020년 2월19일 선고)
사기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기획부동산 사건들의 전말을 추리면 ‘돈 좀 있는’ 사람들을 노린 게 두드러진다. 개인별 피해규모가 크다. 하지만 기획부동산 사기가 사회문제화된 뒤로는 판매단가를 낮춰 ‘손쉬운 투기’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덜 가진’ 자도 상대적으로 쉽게 포섭되는 형태다.
<한겨레>가 법률정보 검색 서비스와 법무법인 포유를 통해 확보한 최근 5년(2016~2021년)간 기획부동산 사기사건 판결문 10건을 분석해보니, 과거 1억~2억원대까지의 피해금액이 1인당 300만원대까지 내려간 추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가지 큰 이유가 보인다. 단가를 낮춰 처벌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중하위 소득계층까지를 상대로 한 박리다매로 매출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전체 10건 중 1인당 피해금액이 1000만원 이하인 사례가 들어간 판결문은 4건이었는데, 계약 체결 시점이 모두 2018년 전후였다. 판매된 토지는 용도상 모두 임야였다. 최소 피해금액은 349만5천원(50평)으로, 광주에서 지사 5곳을 거느리며 활동한 기획부동산그룹이 2018년 7월 한 피해자에게 팔아치운 건이었다. 이들은 1년간 활동하며 경기 광주·성남·하남시와 서울 도봉구에 있는 개발 불가능 임야를 53명에게 매입가격보다 4배 비싸게 팔아 6억4천여만원을 챙겼다. 피해자 대부분은 해당 업체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이다. 재판부는 대표이사(징역 2년6개월)와 사장(징역 2년), 전무(1년6개월)에게 모두 실형을 선고하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바지사장’을 대표자로 진술하도록 하고 증거를 인멸하고 공범들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진술을 조율하기도 하는 등 범행 은폐에 적극적이어서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5년(2016~2021년)간 기획부동산 사기사건 판결문 10건 분석을 통해 파악한 기획부동산의 영업 변화 양상.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 판결문에 드러난 계약 체결 시점은 2010년부터 두루 걸쳐져 있었다. 1인당 피해금액은 최소 2천만원대에서 2억원대까지 다양했지만 ‘2010년 2월 7400만원’, ‘2012년 11월 7644만원’, ‘2015년 7월 5292만원’, ‘2015년 7월 8412만원’ 등 체결한 지 5년이 넘은 계약들 중에선 피해 금액이 5천만원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포유 법률사무소 김경남 변호사는 “처벌받는 사례를 지켜본 기획부동산들이 최근 더 낮은 이윤을 추구하는 대신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취업한 ㅎ사는 다단계 방식으로 ‘바지사장’을 두고 영업한 점에서 위 광주 기획부동산과 유사하다. 하지만 토지 판매에서 사기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실제 처벌 사례를 학습한 기획부동산들의 영업 방식은 사기죄 구성요건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수사기관은 기획부동산이 판매하는 토지를 놓고 △개발제한구역 등 개발이 불가능한 용도인지 △진입로가 확보돼 있는지 △시세보다 얼마나 비싸게 팔았는지 △공유지분 등기자들을 위한 처분계획을 마련했는지 등을 따져 사기 혐의를 입증한다.
이에 기획부동산은 과거처럼 개발이 아예 불가능한 ‘개발제한구역’ 부지 대신 4층 이하 건축물은 지을 수 있는 ‘계획관리지역’ 내 임야를 판매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투자 목적이 ‘건축물 건축’이 아닌데도 업체는 “우리 회사는 그린벨트를 파는 사기 업체가 아니고 필요하면 건물까지 올릴 수 있다”는 말로 피해자를 안심시킨다.
ㅎ사는 충남 당진시 석문면 일대 계획관리지역에 포함된 ‘맹지 임야’를 시세보다 4~5배 비싸게 팔았다. 직원과 체결한 ‘토지매매계약서’를 보면 공유지분 등기자들을 위해 “매수인은 매도 시 매도권한을 매도 회사에 위임한다”는 처분계획도 수기로 남겨뒀다. 수익이 발생하기 어려울 만큼 비싼 가격에 땅을 팔았기에 투자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처분계획이 마련됐다고 보기 어렵지만 김 변호사는 “수익률과 관련해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이미 공개된 개발 호재를 바탕으로 답사까지 시켜주는 방식으로 사기죄를 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변화에 따라 사법당국의 태도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실제 수익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김 변호사는 “종전 판례에는 개발 호재를 허위로 알리는 등 거짓말을 해야 사기로 인정하는 추세였는데, 최근 들어 토지를 투자상품으로 보고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느냐를 보고 있다”며 “신설된 기획부동산들을 보면 법망을 피해갈 정도로만 운영하는데 결국 투자수익이 나기 어려운 땅을 판다는 점에선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기획부동산 피해 사례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진 수년이 걸린다. 업체들이 토지 매수 권유를 하며 “최소 5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설득해서다. 이를 믿고 막연히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잠재적 피해자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판결문에 드러난 피해액도 빙산의 일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동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의 나라. 부동산 성공담이 차고 넘치지만 부동산 게임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없다. 부동산이란 이름의 욕망 전차에도 ‘꼬리칸’은 있게 마련이다. 남들만 돈을 번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중상류층을 올려다보기만 하던 이들마저 영혼을 끌어모아 부동산 투기 열차에 탑승한다. 이들을 꼬리칸으로 안내하는 이들이 바로 ‘부동산 기획자’다.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자극해 쪼개진 ‘땅’의 주인으로 만들고, 2천만원에 갭투자 아파트를 사도록 이끈다. 돈이 적다고 욕망마저 가난할 순 없는, 그럼에도 부동산 생태계에서 끝내 포식자가 되지 못할 이들, 그 2천만원짜리 욕망을 기획하고 판을 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