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을 운영하는 이현(가명)씨가 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
‘(2021.12.17) 노동자 1명 사망. 화성 소재 공사현장에서 옥외주차장 철근배근 작업장소로 이동하던 중이던 재해자가 수평철근을 밟고 내려가던 중 추락하여 사망.’
오늘 노동자가 죽었다. 40대 직장인 이현(가명)씨는 오늘도 트위터에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기록한다. 어제도, 그제도…업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되길 매일 빌지만 헛된 기대였다. 그렇게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에는 지난해 추락, 끼임 등 재해사고로 사망한 529명의 기록이 쌓였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씨는 “노동자들은 정말 매일매일 죽는다. 날씨가 어떻든, 대선을 얼마나 앞두고 있든 정말 매일매일. (다같이)살기 위해 노동자의 죽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많이 알게 되면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이나 사회단체 누리집에서 ‘과거의 오늘’을 기리며 숨진 열사를 소개하는 글을 보다가 ‘숨진 노동자들의 기록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 ‘오늘 죽은 노동자들의 소식은 어디서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제가 기록하기로 했어요.” 140자 이내의 짧은 글이지만 기록은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그는 “‘날짜, 노동자 ○명 사망, 그리고 숨진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이뤄진 짧은 글이지만 이동하면서 쉽게 올리진 않는다. 오타를 내거나 할까 봐 글은 컴퓨터를 통해서만 올린다”고 말했다.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 갈무리
2021년 1월1일 첫 글을 트위터 계정에 올린 뒤 매일 7천명이 넘는 팔로어가 그가 키보드로 꾹꾹 눌러쓴 노동자의 죽음을 접한다. “(팔로어들의) 첫 반응은 하나같이 같아요. ‘정말 이렇게 많이 죽느냐’는 거죠.” 그는 “언론에 보도되는 노동자의 죽음은 극히 일부, 거기다 포털에서 검색되는 죽음은 더 극소수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죽은 노동자의 기록을 올리기 위해 매일 포털에서 ‘숨져’, ‘사망’ 등의 단어를 검색한다. 포털에는 나오지 않는 지역신문 누리집에 들어가 기사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안전보건공단 누리집에 들어가 한줄로 정리된 노동자의 ‘사망사고 속보’를 확인한다. 때로는 숨진 노동자의 주변인들이 제보해오기도 한다. 이씨는 “지난해 1월 경기도 파주시 엘지디스플레이 공장에서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심정지에 빠진 노동자 한 명이 9개월간 투병 끝에 사망했는데, 기사가 나지 않아 주변인이 트윗으로 추모의 글을 올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기록을 할 때 애써 슬픔을 누르지만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홍정운 군의 친구가 연락왔을 때 그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특성화고 노조 학생들이 홍군 사건 재발방지를 위해 서명을 받고 있었어요. 그런 홍보 요청은 종종 오는 편인데 그 학생의 계정을 클릭하는 순간 ‘19살’이라는 것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났어요.”
기록을 하다보니 사회가 놓치는 죽음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그는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이주노동자, 농업·어업 종사자나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 등은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전력 하청 노동자가 전봇대 작업을 하다가
고압 전류에 감전돼 치료를 받다 숨진 사건도 최근 언론 보도를 보고 업데이트했다.
트위터 계정에 쌓인 노동자의 죽음은 비슷한 유형으로 정형화돼 있다. “한전 사고 같은 경우 ‘하청업체 직원이’, ‘안전장치 없이 올라가, ‘감전돼 사망’ 이에요. 건설업은 또 어떤가요. ‘떨어지거나’, ‘떨어지는 물체에 맞거나’, ‘중장비에 치이거나’… 예외가 없어요. 죽었던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계속 숨져요.” 정형화돼있다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사고가 나면 기업은 노동자의 실수를 운운하는데 노동자가 ‘실수해도’ 죽지 않게 하는 것이 기업과 정부가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어떤 죽음도 휘발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씨의 기록은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첫 시행일에 맞춰 책으로 묶여 출간될 예정이다. 현재 600명 이상이 북펀딩에 참여했다. 같이 할 사람이 있다면, 산재 사고 뒤 책임자들이 어떻게 처벌됐는지도 추적해서 기록하는 작업도 해보려 한다.
그의 바람은 계정에 올릴 소식이 없는 사회다. 자신의 바람이 이뤄지는 날을 꿈꾸며 그는 올해도 기록을 이어갈 계획이다.
2022년 1월27일 출간될 책 표지 예시. 출판사 ‘온다프레스’ 제공
2022년 1월27일 출간될 책 내용 예시. 출판사 ‘온다프레스’ 제공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