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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농장돼지, 꽃과 허브가 마음건강 찾아줘요…치유농업 아시나요?

등록 2022-02-18 05:00수정 2022-02-18 10:21

농촌·농업 매개로 심신 회복 돕는 치유농업 기지개
2020년 치유농업법 제정뒤 확산…유럽은 1950년대부터
지난 10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비닐하우스 교육장엔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정신질환자가 ‘엄마 사랑해’라고 쓴 글이 화분에 달려 있다. 정대하 기자
지난 10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비닐하우스 교육장엔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정신질환자가 ‘엄마 사랑해’라고 쓴 글이 화분에 달려 있다. 정대하 기자

“아기 돼지들 이름은 공주, 옹주예요.”

지난 10일 오전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에서 만난 송미나(34) 대표가 농장 식구인 ‘반려동물’들을 소개했다. 송 대표가 가까이 가자 산양과 개, 토끼들이 각자의 몸짓으로 그를 반겼다. 2015년 해월리 옴팡진 터(9900㎡)를 찾아 들어와 꽃, 허브, 채소를 가꾸며 치유농장을 시작한 그는 4년 전 반려동물 놀이터를 지었다.

드림뜰 힐링팜은 원예식물, 동물 등 농장 자원을 활용해 참가자들의 심신을 회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해마다 4월부터 12월 초까지 10~15명 단위로 2~30회짜리 다양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가자들은 농장의 식물들을 손으로 만져보고, 동물들과 교감하고, 숲길을 걷고, 심리치유에 초점을 준 대화를 나눈다. 송 대표는 “일회성 농사 경험을 하는 체험농장이나 수확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 농업과 달리 치유농업은 2회 이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의 심신 회복에 방점을 찍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24회에 걸쳐 정신질환자 10여명을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시킨 완주군정신건강복지센터 이준 정신건강사회복지사는 “평소에 자기표현을 잘 하지 않는 환자들이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진솔한 소감 글을 적는 등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송미나 대표가 지난 10일 산양에게 건초를 주고 있다. 정대하 기자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송미나 대표가 지난 10일 산양에게 건초를 주고 있다. 정대하 기자

작물수확 아닌 건강회복 방점

농촌·농업을 매개로 현대인들의 심신 회복을 돕는 치유농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치유농업이 사회적 취약계층뿐 아니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도 활력을 주고, 농촌과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치유농업은 2020년 3월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치유농업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이 법에서는 치유농업을 ‘농촌·농업 자원을 활용해 정신적·육체적 건강 회복을 꾀해 사회·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농업 활동’으로 정의한다. 앞서 1994년 원예치료를 도입한 농촌진흥청은 2013년부터 치유농업 도입에 나서 2017년 농장 28곳을 치유농업 육성기술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하며 ‘한국형 치유농업’ 구상을 키워왔다.

식물 등 생명체를 키우고 돌보는 활동은 자존감과 책임감을 높여준다. 또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을 주며 사람의 공격성을 낮춰준다. 특히 아동·청소년은 안정감과 유대감을 높이고, 성인은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텃밭 가꾸기만 해도 노인 우울증 해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촌진흥청이 2020년 경증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주1회 2시간씩 10주간 원예활동을 하도록 했더니 객관적 인지 기능이 19.4%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치유농장은 234곳(농촌진흥청 조사) 있는데, 자율적으로 치유농업을 병행하거나 시도하는 농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치유농업은 유럽 등 선진국들에서는 1950년대부터 국민복지 증진 차원에서 도입돼 확산했고, 네덜란드의 경우 1500여곳에 이르는 치유농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치유농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충북에 있는 농장 슬로우파머에서 지난해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충북도농업기술원 제공
충북에 있는 농장 슬로우파머에서 지난해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충북도농업기술원 제공

지방소멸 극복 수단으로 주목도

치유농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경기, 인천, 강원, 충남, 충북, 전북, 전남, 경북, 제주, 광주 등 광역자치단체 10곳과 기초자치단체 30곳에서 치유농업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김병준 광주시농업기술센터 치유농업팀장은 “조례안엔 치유농업센터 건립과 치유농업 지원 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자치단체들이 이렇듯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치유농업이 소멸 위기를 맞은 농촌사회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농업기술원은 농업·의학·보건 등 전문가 15명으로 경북치유농업지원단을 꾸렸으며, 치유농업센터를 건립해 치유농장과 서비스 수요기관을 일대일로 연계하는 등의 서비스를 지원할 방침이다.

충북도농업기술원도 올해 예산 3억7000만원을 들여 치유농장 대표 모델을 육성하고 ‘팜핑’(농촌체험형 캠핑) 공간 조성 등에 나설 참이다. ​신은희 충북도농업기술원 농촌지원과장은 “치유농업과 관련해 협업하기로 한 광역치매센터 및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수요자 맞춤형 치유농장을 연계하고 치유프로그램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농장 46곳에 17억원을 지원해 특성에 맞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광빈 경기도농업기술원 경영기술팀장은 “치유농업센터를 설립해 치유농업사를 채용하고 치매 예방 사업과 등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끌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치유농업 프로그램 운영 모습. 드림뜰 힐링팜 제공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치유농업 프로그램 운영 모습. 드림뜰 힐링팜 제공

김해에 국립치유농업확산센터

정부는 치유농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일대 1만6769㎡에 국립치유농업확산센터를 설립해 2025년부터 운영한다. 김해시가 땅을 매입해 임대하면 농촌진흥청이 건립하게 되는데, 현재 토지보상 감정평가와 설계가 진행 중이다. 농촌진흥청 출연기관인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운영하게 될 국립치유농업확산센터는 치유농업 품질인증제와 치유농업사 자격제도를 운용하고, 치유농업사 양성기관을 관리하는 등 치유농업 ‘헤드쿼터’ 역할을 맡는다. 17개 시·도에 들어설 치유농업센터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시·도별 치유농업센터 건립 지원 대상으로 경북·서울·경기·충남·충북·제주 등 6곳을 선정한 바 있다.

하준봉 경남농업기술원 치유농업담당은 “국립치유농업확산센터는 치유농업 서비스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계하는 플랫폼 구실을 해야 한다. 시장 중심, 수요자 주도형 운영모델을 만들고, 산업으로서 치유농업 성장과 수요자 특성을 고려한 통합적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송미나 대표. 정대하 기자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드림뜰 힐링팜 송미나 대표. 정대하 기자

갑작스러운 인기에 부작용 우려도

치유농업이 뜨면서 ‘치유농업사’ 자격증도 인기를 끌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전국 11곳을 치유농업사 양성기관으로 지정했고, 경북도에선 추가로 2곳을 지정했다. 지난해 양성기관 입학경쟁률은 전국 평균 6 대 1이었다. 지난해 11월 처음 치른 치유농업사 2급 시험엔 392명이 몰렸고, 최종 95명이 합격했다. 지원자의 절반가량은 농장·농업 관련자들이지만,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나 공공기관 취업을 겨냥한 20~30대도 일부 있었다. 전남 담양 용오름자연학교 김형준(52) 대표는 “농촌진흥청 치유농장 시범사업에 참여한 뒤 교육농장과 별도로 치유농장을 조성했고, 전문성을 확보하려고 치유농업사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치유농업 확산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존 체험농장들이 간판만 바꿔 달고 나설 우려 등이 대표적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는 농촌진흥청의 치유농장 인증제 도입이 거론된다.

한태호 전남대 교수(원예학)는 “유럽의 경우 건강을 위해 치유농장에서 머물며 치료를 받는 시민에게 보험금이 지급돼 사전에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도 건강보험이나 사회복지바우처(이용권)와 연계해 치유농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현 농진청 치유농업추진단 사무관은 “국내 치유농업 프로그램은 도입기여서, 일반인이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거주지의 시·군 농업기술센터에 문의해 튼실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치유농장을 소개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대하 daeha@hani.co.kr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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