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 장애 못 알아보고 ‘비협조적’이라며 체포 발달장애인 식별·대응 훈련 필요
지난 1월31일 경기도 평택에서 이웃주민의 ‘동물학대하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발달장애인 신아무개(34·맨 오른쪽)씨를 제압하고 있다. CCTV영상 갈무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제공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새벽 1시20분께 신아무개(58)씨 부부는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아들 집을 찾았다. 35살인 신씨의 아들은 중학교 2학년 시절 발달장애 3급 판정을 받았고, 현재는 아파트에 독립해 혼자 살고 있다. 매주 아들 집을 찾던 신씨와 아내는 이날 아들과 함께 자고 아침에 아들에게 떡국 한그릇을 먹이려 했다. 그런데 아들 집 현관문을 열고 본 광경은 믿을 수 없었다. 아들은 수갑을 차고 있었고 경찰 3명이 아들의 집에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경찰 출동에 불안감 느낀 발달장애인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발달장애인을 인지하지 못한 경찰과 이들의 갑작스런 방문에 불안감을 느낀 신씨가 흥분하면서 사건이 벌어졌다. 아들 신씨와 경찰의 이야기, 신씨 집 내부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종합하면, 1월31일 새벽 발달장애인 신씨의 이웃 주민은 112에 “옆집에서 동물을 때리는 것 같다. 깨갱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신씨를 동물학대로 신고했다. 0시50분께 인근 지구대 경찰 3명이 출동해 신씨의 집의 인터폰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신씨는 화가 났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집에 온다니까 (키우던) 강아지 목욕시키고, 집에 강아지가 싸놓은 배변을 청소하느라고 인터폰 소리를 못 들었어요. 나중에 세게 문을 두들기길래 열었는데 사과도 없이 신고 들어와서 집에 들어오겠다고 하는데, 화가 나잖아요.”
사과부터 하라는 신씨와 협조해달라는 경찰들 간 대치가 몇분 이어졌다. “(나는)마스크도 안 썼는데, 계속 제 앞으로 가까이 오니까 밀었어요.” 신씨가 다가오는 경찰을 미는 순간, 경찰 2명은 신씨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며 수갑을 채웠다. “아프다고, 허리디스크가 있다고 소리 질렀지만 경찰은 듣지 않았어요.” 경찰은 수갑을 찬 신씨를 침대에 앉히고 강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경찰은 신씨가 혐의를 부인했지만 “동물 학대를 했다”며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지구대로 연행할 때까지 신씨를 여러 차례 제압했다. 속옷 차림인 신씨가 바지를 입도록 해달라고 항의하자 벽 쪽으로 밀치는가 하면, 신씨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신씨의 가슴과 어깨를 밀치고 몸 위에 올라타 누르기도 한다.
신씨의 부모는 현장에서 마주한 경찰에게 신씨가 발달장애가 있어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꾸 자극하면 더욱 흥분하게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신씨를 공무집행방해와 동물학대 혐의로 입건했고, 지난 9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신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이유에 대해 경찰은 “경찰관에게 협조하지 않고 현관문을 닫아버리는 행동을 취해서 공무집행방해 및 증거인멸 우려로 판단돼 체포했다”고 통지서를 통해 신씨의 변호인에게 밝혔다.
경찰은 “장애인인지 몰랐다”는 입장이지만, 신씨를 대리하는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경찰의 논리대로라면, 경찰에게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이렇게 다 수갑이 채워져서 끌려가야 하는 거냐”고 말했다.
“장애인 수사 매뉴얼만으로는 부족…훈련 필요”
발달장애인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현장 경찰관들도 발달장애인을 알아보고 적절한 대처를 하도록 훈련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달장애인(지적·자폐장애인)으로 등록된 장애인의 수는 2016년 21만8136명에서 2020년 24만7910명으로 4년새 13.65%(2만9774명) 증가했다.
실제로 경찰관이 사건 현장에서 발달장애인의 장애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들의 반응을 ‘비협조적인 행위’로 해석하며 강압적으로 제압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경기도 안산에서는 한 행인이 중증 지적발달장애인이 혼잣말하는 것을 이주 노동자가 위협하는 것으로 오인해 신고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장애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며 뒷수갑을 채워 연행한 일이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장에게 “평소 발달장애인 관련 직무교육이 진행됐고, 경찰관이 피해자의 행동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및 행동특성을 발견하고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다면 뒷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발달장애인 대상 현장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배포할 것을 권고했다.
해외에서는 경찰에게 발달장애인 대응과 관련한 훈련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는 발달장애인 대응과 관련해 최소 2시간의 훈련을 필수로 하고 있다. 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국제경찰장협회(IACP)도 “법 집행 직원은 지적 및 발달장애인을 식별하도록 교육받아야 한다”며 관련 가이드라인을 누리집에 올려놓았다. 해당 가이드라인에는 발달장애인임을 판단할 수 있는 외관적 특징과,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이 상세히 적혀있다. 김영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간사는 “몇년 전 경찰청이 장애인 관련 수사 매뉴얼을 내놓았지만 초기대응이 이뤄지는 현장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매뉴얼이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사관들이 현장에서 발달장애인을 인지하고, 이들의 특성에 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의 행동을 폭행으로 보고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도 나온다. 발달장애인은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이를 표현하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공격적인 형태의 ‘도전적 행동’을 보인다. 지난해 9월 서울시복지재단이 개최한 ‘발달장애인의 특성에서 비롯된 범죄, 처벌만이 해답인가’ 간담회에서 전가영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한 발달장애인이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된 사건과 관련해 “피고인이 폭행할 의사를 가지고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면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발달장애인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욕구를 표현한 것을 두고 폭행할 의사를 가지고 행한 폭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국제경찰장협회(IACP) 누리집에 올라온 ‘지적장애인 및 발달장애인과의 상호작용’ 지침서
“수사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고려를 해줬으면”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신씨에게 보장된 발달장애인 제도를 지키지 않기도 했다. 형사소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수사기관이 장애가 있는 피의자에게 필요한 경우 신뢰 관계인을 동석하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신씨 부모는 경찰에게 장애인등록증을 제시하는 등 신씨의 장애를 알렸고, 신씨 역시 사건 당일 아침 ‘머리가 아프다’며 부모와 조사를 받겠다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씨 아버지는 “아들의 경우 머리가 아프다는 것은 곧 발작이 올 수도 있다는 신호다. 장애인은 보호자가 대동해서 조사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조사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지원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도 이번 사건에 배정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평택경찰서 관계자는 “아버지 동석 하에 조사를 권유했지만 신씨가 거절했다”고 했다. 또한 평택경찰서 여청청소년과 소속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이 신씨를 조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상황으로 각 과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형사과가) 전담경찰관의 조사를 요청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관도 임무가 참 많겠지만, 장애인 부모 입장에서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아들이 겪은 일을 알려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위험한 상황에서는 물론 제압해야겠지만 상대가 혹시 장애인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신씨 아버지의 말이다. 신씨 쪽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을 직권남용체포와 독직폭행,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