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ㄱ씨는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를 시작했다. 회사에 코로나 확진 사실을 알리자, 상사는 “증상이 경미하면 일하는 게 좋겠다”며 회사에 있던 노트북을 퀵서비스로 ㄱ씨 집에 바로 보냈다고 한다. ㄱ씨는 나중에라도 증상이 심해질까 걱정됐지만, 회사에 ‘왜 재택치료 받고 있는데 근무를 강요하느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
최근 오미크론 확산세에 따라 ㄱ씨 같이 재택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면서 재택치료 도중 근무를 강요받고 있어 난감하다는 직장들의 고민도 늘고 있다.
28일 직장인 ㄴ씨는 “코로나 확진돼서 재택치료 중인데 (회사에서) 계속 업무 지시를 한다. 상사는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하던 일을 하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하는데 수긍은 되면서도 너무 아파서 업무 수행을 못 하는 상황이 될 경우 회사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수의 자가격리를 우려해 아예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못 받게 하는 사업장도 있다고 한다. 직장인 ㄷ씨는 “회사에 같은 부서 직원이 확진됐다. 지금 확진자는 출근을 안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프로젝트 납기일 마감이 중요하다며 같은 부서 사람들 모두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는 확진자 다수 발생시 업무 공백으로 인한 차질이 고민이다. 특히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일손이 아쉽다 보니 일을 부탁할 수 밖에 없게 된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김아무개(51)씨는 “전체 직원이 6명인데 직원 한명의 가족이 확진돼 일단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작은 회사라 한명이 확진되면 업무 공백 클 텐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가 법으로 보장돼있지 않다 보니 민간 기업의 경우 확진자에 대한 처리가 제각각으로 벌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코로나19에 확진되거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격리해야 하는 경우 연차와 별도로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지만 ‘권고 사항’에 그치고, 확진됐을 경우 업무 지시 범위와 관련된 법적 기준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갑질 119 최혜인 노무사는 “현행법상 재택치료 도중 근무를 지시하는 경우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지금 상황이 초유의 감염병 사태이긴 하나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장해야 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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