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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차별금지’를 노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꾸며

등록 2022-03-06 09:36수정 2022-03-06 14:05

[한겨레S]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릴레이 연재

가요 시상식에서 ‘차별금지’ 말한 이랑
오디션 프로에서 “남성만 지원” 등
‘여자다움, 남자다움’ 요구도 여전
차별금지법, 약자 지키는 방패 되길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지난 1월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받은 뒤 노래하고 있다. 케이비에스(KBS)조이 유튜브 갈무리
싱어송라이터 이랑이 지난 1월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받은 뒤 노래하고 있다. 케이비에스(KBS)조이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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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이며 감독인 이랑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이랑은 지난 1월23일 일요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제31회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받았다. 그날 이랑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40여명의 합창단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자작곡 ‘늑대가 나타났다’를 불렀다. 합창단이 무대에서 보여준 것은 노래만이 아니었다. 노래가 흐르는 사이, 40여명의 합창단은 ‘차별/금지/법/지금’이라는 수어를 네번이나 반복했다. 그 뒤 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다시 등장한 이랑은 “제 친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면서 약간 혁명가 같은 곡들을 노래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디 제가 이런 곡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도 했다.

여전히 곳곳에 차별은 존재한다

예술시상식 무대에서 예술가들이 사회적인 의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일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럼에도 좀처럼 사회적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던 시상식에서 차별금지법 이야기가 나온 일은 특별하다. 이랑이 말과 글과 노래와 행동으로 목소리를 내온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야기한 예술인은 드물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사실 오늘의 예술가는 어딘가 있음직한 상상의 세계만 노래하지 않는다. 어떤 예술가는 자신의 이야기,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노래한다. 이랑이 <늑대가 나타났다> 음반을 만들고, 시상식 무대에서 ‘차별/금지/법/지금’이라는 수어를 펼쳐 보인 것은 그동안 자신이 일상적으로 차별을 경험하는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끊임없이 차별당하는 이야기를 계속 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가답게 섬세한 촉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주목받는 예술가임에도 별다른 권력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약자인 사람에게 보이는 세상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뤄낸 나라에도 차별은 있다. 차별은 국민총생산(GNP) 수치와 정비례로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젊어서 차별받고, 여자라서 차별받는다. 가난해서 차별받고, 아프거나 장애가 있어도 차별받는다. 생각이 달라도 종종 차별받는다. 삶의 방식이 똑같지 않아서, 늙어서, 수도권 밖에 살아서, 피부색이 달라서 받는 차별까지 차별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 대중음악인이라고 차별의 경험이 없을까. 한국에서 혼혈 뮤지션은 사회의 냉대를 감당해야 했던 시간이 길었다. 아직도 장발을 하거나 타투가 있는 뮤지션은 모자를 쓰고 긴팔을 입고서야 방송에 나올 수 있는 관례를 차별이 아니라고 우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회문제를 고발하거나 조금 다른 생각을 노래한다는 이유로 방송을 금지당하고 활동을 정지당한 노래는 수두룩하다. 지난해에도 <시비에스>(CBS)는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뮤지션팀인 라이오네시스의 신곡을 금지곡으로 판정했다.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표현의 자유와 차별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가수 이랑은 서울가요대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케이비에스(KBS)조이 유튜브 갈무리
가수 이랑은 서울가요대상에서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케이비에스(KBS)조이 유튜브 갈무리

차별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최근 한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남성 뮤지션들만 지원할 수 있게 했다가 물의를 빚은 사례도 있다. 솔직하게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 대중예술인들을 비방하고 악플을 다는 이들은 자신이 여성이자 예술가인 한 사람을 낙인찍고 차별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더 이상 블루스나 힙합 같은 흑인음악이 불평등과 차별을 자산으로 싹 틔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서는 안 된다. 힙합을 비롯한 일부 장르에서 성차별과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를 공공연하게 노래해왔던 분위기는 차츰 사라지고 있다.

여성 뮤지션에게 ‘여자다운’ 특정 역할과 스타일만 수행하게 하는 것 역시 성 역할을 고정시키는 차별이다. 그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 뮤지션들이 침묵을 강요당해 자신답게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을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더 많이 변화해야 한다. 여성 뮤지션은 천편일률적인 프레임에 갇혀 있어야 하는, 누군가를 위한 꽃이 아니다. 여성 뮤지션들의 노래와 의상, 안무는 더 다양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지난해 세계적인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성소수자 인권의 달(Pride Month) 6월에 맞춰 성소수자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 ‘프라이드 허브’를 시작한 사례는 작지 않은 변화의 증거다.

그런데 지엔피 4만달러 시대를 이야기하는 시대의 차별은 공공연하지 않다. 오늘의 차별은 자신을 세련되게 포장해 숨길 줄 안다. 이제 차별은 공정이나 취향과 결합해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한국에서 차별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기제는 시험이다. 많은 이들이 한번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평생 더 많은 혜택을 얻어도 된다고, 자신이 그럴 자격을 얻었다고 확신한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노력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 싸잡아 이야기한다. 그것이 공정한 방식이며, 최선이라고 말한다. 취향을 내세워 거부감을 드러내며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 결과 누군가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떤 존재로 태어났어도 평등하게

어디에서 어떤 존재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지는 세상을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성으로, 장애를 가지고, 성소수자로, 또는 그 밖의 존재로 태어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허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그 허들이 없는 것처럼 대한다.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조건 아래 놓였다는 이유로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이 즐비한 사회, 자신이 선택한 삶이라 할지라도 너무 큰 손해와 모멸을 감당해야 하는 사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런 집단을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사회는 다른 사람, 다른 삶을 선택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으로 자신답게 살아가는 일이 고통스러워서는 안 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차별을 차별금지법만으로 다 막지는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없는 오늘과 있는 내일은 많이 다를 것이다. 차별금지법이라는 우산과 방패가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맛있는 빵과 디저트를 사랑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구현되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특히 관심이 많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스스로 놀라는 글을 쓰고 싶어 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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