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에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20일 낮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곳곳에선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였다. 국방부 근처 길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대통령이 여기로 온다”, “교통 장난 아니겠다” 같은 말을 나눴다. ‘용산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집무실 이전을 환영하는 현수막도 곳곳에 걸렸다.
이날 오전 11시 윤석열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발표하며 용산 인근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추가적인 개발 규제는 없다”, “교통통제로 인한 시민 불편은 없다”고 밝혔다. 이날 만난 주민들은 당선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세우면서도 용산 집무실 이전이 속전속결로 추진되는 것에 거부감을 보였다.
국방부 청사 인근에서 수십 년 살았다는 토박이 주민들은 불만을 내비쳤다. 한강로1가에 있는 한 백반집에서 만난 사장과 이웃 주민 2명은 ‘집무실 이전 이후’를 걱정했다. “추가 규제는 없다”는 말에도 지역 재개발과 재건축이 어려워져 주변 환경이 더욱더 낙후될 것이라는 우려다. 국방부 인근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는 백반집 주인 이아무개(61)씨는 “심란해 죽겠다. 갑자기 국방부로 대통령이 올 줄 상상도 못 했다”며 “대통령이 여기로 온다고 해서 구석구석 골목을 살필 것 같지도 않고, 개발도 안 돼서 주변 환경 정비도 엉망인데 걱정이다. 이전 비용으로 소상공인이나 지원해주지 그러냐”라고 말했다. 특별계획구역에 묶여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한강로1가 삼각맨숀 거주자인 ㄱ씨는 “규제가 없을 것이란 건 당선자 생각이고 (규제 문제는) 이전과 함께 따라오는데 당선자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거냐”고 했다.
‘집무실 용산 이전’은 후보 당시 공약에도 없었는데 너무 급하게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강로1가 근처 잡화점에서도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았다는 주민 2명이 윤 당선자의 기자회견을 두고 상기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60대 여성 ㄴ씨는 “당선자를 찍었는데 후회한다. 우리가 사는 데가 지저분하다고 쫓겨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ㄴ씨는 “대통령 집무실 옮기는 걸 무슨 아파트 상가에 들어오는 것처럼 하고 있다. 완전 ‘무데뽀(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윤 당선자의 기자회견에서도 언급된 ‘풍수지리’ , ‘무속 논란’도 주민들의 화제에 올랐다. ㄴ씨와 주민들은 “무속인이 추천해준 것 아니면 이렇게 밀어붙일 순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나눴다. 윤 당선자가 용산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힌 뒤 진행된 일문일답에서 “처음에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가 용산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급하게 이뤄진 거 아니냐는 논란이 많다. 풍수지리라든가 무속 논란도 같이 불거지고 있고 민주당에서도 이런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윤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도 나왔지만 무속은 민주당이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용산 (이전) 문제는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고 공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대안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 당선자가 공관은 현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쓰겠다고 밝히자 교통 정체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윤 당선자는 이날 연 기자회견에서 “출퇴근길 교통 통제로 인한 시민 불편 등에 대한 대안이 있냐”는 질문에 “교통통제하고 (집무실에) 들어오는 데 3~5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면 시민에게 큰 불편은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남동 공관에서 국방부 청사까지는 거리는 약 3.6㎞로 최소 하루 두번 이상 이 구간의 교통이 통제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구간은 출퇴근길 상습 정체 지역인데 교통통제와 전파차단까지 이뤄지면 시민 불편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삼각맨숀에 사는 ㄷ씨는 “지금도 출퇴근길 정체가 심한데 대통령 이동까지 겹치면 엄청 막힐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교통통제라든지 계속 불편이 야기된다면 집무실 근처에 관저를 두는 게 맞지 않느냐 하는 검토는 있었다”고 말했다.
용산 지역 주민들의 온라인 카페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분출됐다. “용산 입장에서는 보는 방향에 따라 호재일 수도 있고 악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이렇게 준비 없이, 사전 통보도 없이 이전하면 나라의 안보는 어떻게 되는가”, “저는 1월에 이사를 결정하고 계약해서 6월에 이사하는데 청와대, 국방부 등 이전이 제가 이사 준비하는 것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아직 취임 전인데 앞으로가 점점 더 걱정스럽다” 등의 반응이 눈에 띄었다. “용산공원 조성이 당겨져서 좋고 규제도 없을 것이라고 당선자가 기자회견에서 직접 언급한 만큼 너무 걱정하는 것보다 지켜보는 게 좋을 듯싶다”는 의견도 올라왔다. 용산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ㄹ씨는 “집무실 이전으로 기존 부동산 기본 계획들이 180도 바뀔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만 용산에서 낙후된 지역의 경우에는 개발이나 환경 정비에 대한 제약이 따를 것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삼각맨숀. 이곳 일부 주민들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철회하라며 지난 18일 국방부 청사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 관계자들이 탄 버스를 막아서기도 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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