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타설 공사 중 붕괴사고가 일어나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진 광주 화정아이파크 사고 현장 모습.연합뉴스
무단 시공에 부실감리, 불법 재하도급까지….
노동자 6명이 숨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는 인재였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28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201동 붕괴사고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을 열어 “이번 사고는 시공사, 하도급업체, 감리 등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수사결과는 8개월 전 9명이 숨진 광주 학동4구역 붕괴사고와 판박이다. 경찰은 공사기간 단축이나 비용 절감 등 사고 원인 배경은 밝히지 못해 이 부분에 대해선 추가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 등 전문기관 감정과 압수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39층 바닥 콘크리트 타설할 때 공사 관계자들이 안정성 검토 없이 데크 플레이트(철근 일체형 거푸집)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봤다. 경찰은 39층 바로 밑층인 피트층(배관층) 높이가 낮아 동바리(임시 지지대) 대신 무게 수십 톤의 콘크리트 지지대를 설치해 하중을 심하게 증가시킨 것도 사고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표준 시방서와 달리 아래 3개 층(36∼38층)에 동바리가 설치되지 않아 지지력이 약화됐고, 일부 콘크리트는 기준 강도에 미달해 23층까지 연속 붕괴했다는 것이다.
시공사 에이치디시(HDC)현대산업개발(현산) 현장소장, 품질관리자 등은 하청업체가 공사 지연 등을 우려해 공법을 무단 변경했지만 묵인했고 동바리 설치 여부, 콘크리트 품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하도급업체 현장소장 등은 겨울철 콘크리트 타설을 강행하면서 제대로 보온을 하지 않는 등 양생(굳힘) 관리를 소홀히 했다. 이를 지적해야 할 감리도 부실시공을 묵인했고 콘크리트 품질을 확인하지 않은 채 타설을 승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광남 광주경찰청 수사부장이 28일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중간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시공사, 하도급업체, 감리 등의 과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경찰 수사 과정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사는 현산과 정식 하청 계약을 맺은 가현종합건설이 아닌 펌프카업체 영풍건설 노동자들이 한 것으로 드러나 불법 재하도급 정황도 확인됐다. 또한 공사 터는 원소유주에서 지역 부동산업체를 거쳐 시행사인 에이치디시 아이앤콘스로 이전됐지만 지역 부동산업체는 명의이전 과정에서 빠지며 양도세 등을 포탈한 혐의도 있다.
광주 서구청 공무원은 공사자 인근 주민들이 소음, 진동, 비산먼지 등 민원을 제기하자 사전에 현산 쪽에 이런 사실을 알리고 현장점검을 나간 정황도 있어 경찰은 업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입건했다.
다만 경찰은 콘크리트 강도 미달 원인이 관리 부실인지 원재료 불량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동바리 미설치 묵인 등 부실 시공에 대해서도 공사기간 단축, 비용 절감 등의 이유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현산 본사에 대한 후속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화정아이파크 1, 2단지에 공사품질 담당자가 3명씩 배치됐지만 실제 품질관리 업무는 1명이 한 것으로 보고, 본사 차원에서 미흡한 인원을 발령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현재 경찰은 현산 8명, 가현건설 등 하도급업체 5명, 감리 3명, 공무원 1명 등 20명을 입건했으며 이 중 현산 관계자 3명, 가현건설 2명, 201동 담당 감리자 1명을 구속했다.
김광남 수사본부 부본부장은 “감리자가 정당한 감리 업무 수행으로 공사를 지연할 경우 민사 책임을 면하도록 하는 등 감리 권한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품질관리자는 겸직 없이 품질관리 업무에만 전념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6월 현산이 시공을 맡은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구역 철거공사 중 붕괴사고가 일어나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당시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지목됐고 청탁으로 선정된 감리는 현장점검과 감리일지 작성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관리감독청인 동구청은 공사 위험성을 지적하는 주민 민원이 접수됐지만 현장 확인 대신 서면 경고에 그쳤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