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횡령으로 50억원 이상을 갈취하거나 상습 보이스피싱·다단계 사기 등을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가 추진된다. 확정판결 받은 성범죄자나 강력범죄 피의자에 국한됐던 신상공개 대상 범죄가 ‘경제범죄’로도 넓어지는 것이다. 신상공개에 따른 범죄억제 효과 등 실효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1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올해 50억원 이상 규모의 사기·횡령·배임 등을 저지르거나 상습 보이스피싱·유사수신(다단계 사기) 등으로 이득을 취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다중사기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를 추진한다. 두 경우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각각 국회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과 다중사기범죄피해방지법 제정안(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이 발의돼 있다. 경찰은 두 법안에 모두 찬성 의견을 내고 법 제·개정을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법안에서 규정한 신설 신상공개 대상이 되는 경우로는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인 사기·공갈·횡령·배임 등 특정재산범죄 △도피액이 50억원 이상인 재산국외도피죄 △수수액이 1억원 이상인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의 수재 등의 죄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 유사수신행위, 무인가 등 금융업 영위행위의 다중사기범죄 상습적 피해액이 50억원 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
경찰은 피해 복구가 어려운 사기 범죄의 특성상 예방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경제범죄 피의자도 신상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이스피싱·사이버사기·유사수신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금융·통신기법을 이용해 금전을 갈취하는 다중피해사기 규모는 날로 늘어나고 있어서다. 지난해 다중피해사기로 인한 피해액만 최소 4조원대로 추산된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020년 7000억원에서 2021년 7744억원, 다단계 사기로 인한 피해액은 2020년 2136억원에서 2021년 3조1282억원으로 집계됐다. 김종민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과장은 “사기범이 수차례 재범을 저지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상공개로 피해자가 사전에 범죄자의 사기 전력 등을 알 수 있어 속아서 투자하는 일 등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기 범죄의 심각성은 인정하지만 신상공개와 관련해 국회에서 ‘신중 의견’도 나온다. 특히 특정경제범죄법 개정안은 확정판결 이전 피의자 단계에서 신상공개를 할 수 있는 조항을 넣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특정경제범죄법 개정안에 대해 “피의자 단계에서 신상공개가 되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유죄로 확정되는 경우에도 형 집행 후 사회복귀나 재사회화를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확정판결 받은 경우’로 정리해 신상공개 대상을 정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강력범죄와 성범죄에서도 효과 논란이 분분했던 신상공개가 경제범죄에서도 실익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사기범죄는 강력범죄와 달리 가해자의 얼굴을 모르고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신상공개를 할 실익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사기 특성상 억울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병찬 변호사(파트너스법률사무소)는 “채권추심 업무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속아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으로 몇차례 일했다가 실형을 받는 이들도 많다”며 “잘 모른 채 범행에 가담한 것까지 상습 사기범으로 엮일 경우엔 신상공개는 지나치게 과도한 형벌”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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