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놈의 전쟁 땀시 러시아산 황태를 구할 수 없당께. 3천원짜리 해장국 팔아서 남는 게 뭐가 있겄어. 봉사하는 심정으로 장사하고 있다니께.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뭘 새로 시작할 수도 없고, 죽겄어 참말로.”
27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낙원동은 3천원짜리 국밥 한 그릇으로 한 끼를 때우려는 이들로 붐볐다. ‘황태해장국’ 간판을 걸고 이곳에서 40년 넘게 국밥을 팔아온 김순임(74)씨는 손님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숨통이 트이나 했는데, 최근 올라도 너무 오른 식자재 가격 때문에 장사를 접어야 하나 고민이다. 종로3가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을 상대로 황태해장국을 3천원에 팔고 있지만, 최근 황태를 포함해 대부분의 재료 가격이 올랐다. 건어물 유통회사 관계자는 “업소용 러시아산 황태 1㎏이 2만4천원대였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온라인 쇼핑몰에서 2만9500원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냉동명태(동태) 1마리 가격도 1년 만에 2597원에서 2992원으로 15% 넘게 올랐다. 유통공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발 국제 정세 변화 및 수급 불안정 우려 심리 등으로 가격이 상승했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벌인 전쟁이 김씨의 40년 국밥집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가게 임대료가 월 165만원으로 갑절 가까이 오른 뒤 해장국 값을 3천원으로 천원 올렸던 김씨는 또 가격을 인상할 수는 없다고 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단골손님들 발길마저 돌리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3천원짜리 선지해장국을 파는 식당 사정도 마찬가지다. 주인은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 끼니 가격을 차마 올릴 수가 없다. 3천원 받는 소주 값은 올릴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40년 넘게 황태해장국을 팔아온 김순임(74)씨가 27일 낮 서울 종로 낙원동 가게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황태해장국을 3천원에 팔고 있지만, 최근 급격한 식자재 가격 인상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0년3개월 만에 최대폭인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하면서 노인·노동자·학생 등이 주로 찾는 ‘가성비 밥상’이 들썩이고 있다. 주머니 가벼운 손님들을 맞이하는 식당 주인들의 고민이 깊어간다.
경기도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에 들어선 한 공장에서 한 끼에 5천원짜리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박명자(75)씨는 “코로나19로 주변 공장들 사정이 다 힘들어 공장 사장님들이 ‘제발 식권 가격을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마트 전단을 바닥에 쫙 펼쳐 놓고 최저가격을 찾으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파트 건설현장 근처 6천원짜리 백반집도 사정은 비슷했다. 주방장 지영옥(60)씨는 “김치 등 기본 반찬 5개에 고기나 해산물이 주재료인 메인 반찬 1개 구성을 쉽게 바꿀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매일 백반집을 찾는 건설현장 노동자, 주변 직장인들이 반찬을 하나라도 빼면 바로 알아차리고 불만을 표시할 게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6일 경기도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 내 공장 구내식당의 5000원짜리 식단,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학생식당의 6500원짜리 식단, 27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인근 3000원짜리 황태해장국, 26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있는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 식단. 박지영 고병찬 서혜미 기자
대면수업 재개로 학생들로 붐비는 대학가 밥상도 글로벌 물가 상승에 들썩인다. 서울대는 지난 1일 학생식당 식대를 기존 3천~6천원에서 천원씩 인상했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생협)은 식대 인상 공고에서 “그동안 계속되는 식당 운영 적자에도 식대를 동결하고자 노력해왔으나 인건비와 재료비, 경비 상승으로 적자 누적이 심화되면서 경영상 큰 위기에 직면했기에 부득이 식대를 인상하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서울대 생협 직영 6개 식당에서는 1인분당 적자가 평균 1185원 발생했고, 최근 4년간 연평균 적자는 21억8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취약계층 무료급식소인 서울 영등포구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도 고민이 깊다. 이곳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식 대신 주먹밥과 계란, 바나나, 라면, 초코파이 등 대체식을 나눠줬다. 26일에도 이곳은 하루 약 350명이 먹을 수 있는 대체식을 준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찾아오는 인원은 늘고, 다시 급식으로 전환하려는 즈음 고물가 파도가 덮쳤다.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데 코로나19 이후 후원금도 줄어든 상태다. 토마스의 집은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찾아오는 이들이 올해 초 180명에서 2배 늘었다. 체감상 식재료비는 30%가량 오른 것 같다. 기존에 나눠드리던 게 있는데 물가가 올랐다고 해서 어떤 재료를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달 2일부터 급식을 재개하는데 그사이 또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걱정이 크다. 장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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