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표지 이미지. 주인공 ‘류건우’는 술을 마시다 잠든 다음날 ‘박문대’의 몸에 빙의돼 아이돌에 도전하게 된다. 카카오페이지 갈무리
지난달 1일 홀트아동복지회엔 ‘요츠바 타마키’라는 이름으로 후원금 20만원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요츠바 타마키’는 일본 애니메이션 ‘아이돌리쉬 세븐’에 등장하는 캐릭터였다. 현실 속 아이돌 팬클럽처럼 애니메이션 속 요츠바 타마키의 생일(4월1일)에 맞춰 팬클럽이 그의 이름으로 기부에 나선 것이었다. 지난해 말에도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의 웹소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속 등장인물 ‘박문대’의 생일을 기념해 그의 팬들이 82만원을 홀트아동복지회에 후원했다.
인기 아이돌그룹이나 유명 연예인 팬클럽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등의 생일·데뷔일 등 특별한 날을 맞아 기부·나무심기 등 공익 활동을 하는 ‘1세대 팬덤 기부’는 꾸준히 있어 왔다. 최근에는 온라인 콘텐츠 소비에 익숙한 엠제트(MZ)세대를 중심으로 실제 사람이 아닌 버추얼 인플루언서(가상인간)나 애니메이션·게임 콘텐츠 속 가상 캐릭터 팬들이 주도하는 ‘2세대 팬덤 기부’가 늘고 있다.
지난 3월25일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가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한 ‘오로지구챌린지’ 관련 게시물.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해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기부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1.6%로 2019년(25.6%)에 견줘 4%포인트 줄었다. 특히 10대(10.3%), 20대(12.9%)의 기부 참여율이 낮게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이 온라인 콘텐츠 등장인물에 큰 반응을 보이자 자선단체들은 가상인물을 내세운 기부참여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달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광고모델 등으로 활약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와 함께 폐현수막을 재활용해 열쇠고리를 제작하는 ‘오로지구 챌린지’를 진행했다. 로지가 인스타그램에서 이 캠페인을 알린 게시글에는 ‘좋아요’가 6000건 가까이 달리는 등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 본부장은 5일 “로지에 대한 엠제트세대의 호응과 인지도,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로지를 통해 기후변화에 민감한 이들의 공감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도 엠제트세대가 추구하는 다양한 기부 방식에 맞춰 새로운 기부 문화 형성과 참여를 이끌어낼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1세대 팬덤 기부 역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와 미국 인디애나대 릴리 패밀리 필란트로피스쿨이 최근 5년간 국내 팬덤 기부 규모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6년 7억7200만원에서 2020년 34억5300만원으로 4배 이상 커졌다. 오솔길 밀알복지재단 홍보팀 주임은 “팬덤 기부 문의가 늘어나고, 이것이 실제 기부로 이어지면서 재단 차원에서 ‘착한 덕질 시리즈, 팬기부 챌린지’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팬들의 기부에 영향을 받은 스타가 역으로 팬클럽의 이름으로 기부에 동참하는 등 나눔의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