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농성장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대통령 취임식 전 단식농성장 철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병찬 기자
지난 2일 국회사무처가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는 단체에 10일 대통령 취임식 전까지 농성장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한 가운데, 철거 요청의 법적 근거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경호처와 경찰은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 철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는 6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병석 국회의장은 국회사무처의 농성장 자진 철거 협조 요청을 거두고, 농성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장예정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은 “한달 가까이 단식 농성을 한 사람들의 공간이 언제 뜯겨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10일 0시부터 이 공간을 책임지는 윤 당선자와 대통령경호처는 명확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차제연은 9일 밤 9시부터 공간을 지키기 위한 철야농성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앞서 지난 2일 국회사무처는 대통령 경호처 등과 협의해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 5조를 근거로 차제연에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오는 9일까지 농성장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했다. 관련 조항은 경호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은 경호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경호구역에서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조치 등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단체와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들은 ‘경호상의 상당한 이유’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경호법 5조에서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최소한의 범위로 경호 관련 활동을 하라는 이중의 제한 조치를 두고 있다”며 “농성장이 대통령 경호에 위협이 되는지, 철거해야 할 불가피하고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대통령경호처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한겨레>에 “농성장은 취임식장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고, 집회·결사의 자유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보장해야 하는 기본권적 권리다. 입법을 빨리 해달라고 단식하는 사람들을 취임식을 핑계로 철거한다면 잔인하다”며 “뜻을 함께하는 의원들과 국회사무처에 의정활동을 위해 있는 농성장을 철거하면 안된다고 분명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3일 국회사무처 의회경호담당관실 관계자도 “대통령 취임식은 외빈들도 오는 공식적 행사인데 (농성장이) 좋게 보이진 않기 때문에 경찰과 구청, 대통령 경호처와 협의해 취임식 당일이라도 철거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한 것”이라며 철거 요청의 이유로 ‘미관’을 들기도 했다.
경호처와 경찰은 차제연 쪽이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 철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안전유지 차원에서 검토해 (적절한)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평화롭게 농성장이 유지되면 내버려둘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그러기는(그냥 두기는) 쉽지 않겠다. 경호 구역 내에 있기 때문에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식 당일 국회 일대 경비를 맡는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경호처와 협의해 대통령경호법에 저촉된다고 하면 철거 또는 별도 조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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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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