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지하철역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하던 중 이를 막는 지하철보안관들과 대치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발달장애인 가족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 분향소를 마련하려 했지만, 서울교통공사가 “역사 내 승인 없이 시설물 설치는 금지”라며 분향소 설치를 막아 약 5시간을 대치했다. 분향소는 부모연대와 교통공사 간의 협의 끝에 오후 5시30분께 승강장이 아닌 역 출구 개찰구 주변에 설치됐다. 부모연대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해달라”고 촉구했다.
26일 낮 12시30분께부터 부모연대 활동가 30여명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과 가까운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혜화역 방향 1-1 승강장에 모여 분향소 설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분향소 설치를 막기 위해 나온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해당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어 부모연대 활동가들은 혜화역 방향 2-4 승강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부모연대 활동가들은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설치 및 1주일간 추모진행’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벽에 붙이는 등 분향소를 마련하려 했지만, 현장에 나온 지하철 보안관들이 활동가들을 둘러싸고 설치를 제지했다. 이날 공사는 57여명의 지하철 보안관이 현장에 투입됐다고 밝혔다.
분향소 설치를 막는 과정에서 지하철 보안관들과 부모연대 활동가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한 발달장애인 부모는 지하철 보안관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바닥에 쓰러져 119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김홍미(58)씨는 “지하철 역 안에 문화 공간도 만드는데, 추모소 하나 이렇게 만들기가 힘든가. 너무 야박하다. 평소 허리가 아파서 복대를 차고 있는데, 나를 끌어내려던 지하철 보안관에게 ‘제발 (강제로) 끌지 말라’고 호소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내 다리를 강제로 질질 끌 수 있는가”라고 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지하철역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지하철보안관들과 대치했다. 신소영 기자
교통공사는 현행법과 승객 안전 등을 이유로 승강장 내 추모소 설치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삼각지역장은 부모연대 쪽에 입장문을 보내 “역사 내 승인 없이 시설물 설치는 금지되어 있으며 관계 법령에 처벌받을 수 있다”고 알렸다고 한다. 공사 홍보실도 <한겨레>에 “지하철 승객 안전과 철도안전법 상 승강장 내 추모소 설치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분향소는 부모연대와 교통공사간의 오랜 협의 끝에 이날 오후 5시30분께 승강장이 아닌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주변에 설치됐다.
삼각지역 개찰구 주변에 설치된 분향소. 박지영 기자
앞서 부모연대 등 장애인단체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6·25 상징탑 앞에서 ‘죽음을 강요당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제’를 열고 가족 중심 장애인 부양 체계를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 체계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 아파트 화단에서 40대 여성과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되고, 같은 날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뇌병변 1급의 중증 장애인인 30대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60대 여성 ㄱ씨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한국 사회는 장애인 가족에게 사회적 타살을 강요하고 있다”며 “정부는 반드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발달장애인 종합지원 계획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지난달 19일 부모연대 회원 등 발달장애 부모와 당사자 550여명은 전국 각지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주간 활동지원서비스 개편 및 확대 △지원주택 도입 및 주거지원 인력 배치 등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계획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국정과제로 채택해줄 것으로 촉구했다. 이에 인수위는 지난 3일 110대 국정과제를 공개하며 ‘발달장애인’ 정책으로 △발달장애인 거점병원과 행동발달증진센터 확충 △장애 조기발견 개입을 위한 서비스체계 구축 △발달재활서비스 지원과 어린이 재활의료 인프라 확대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모델 평가를 통한 확대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부모연대는 “110대 국정과제에서 발달장애 영역은 전임 정부에서 진행했던 정책들의 재탕에 불과했으며, 발달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제도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죽음을 강요당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최근 함께 죽음을 선택한 발달장애인 가족 분향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헌화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24시간 지원체계구축 등을 촉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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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