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김선옥(가명)씨는 경기도 용인의 한 회사에 입사한 뒤 부장의 폭언과 협박에 시달렸다. 김씨에게 퇴사를 강요하고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조회 시간에는 “XXX 때문에 분위기가 안 좋다”, “이런 X같은” 욕설과 협박 발언을 했다. 참다못한 김씨는 지난해 12월 회사 전무에게 이 사실을 신고하고 면담을 통해 고통을 호소했지만, 회사 차원의 조사나 피해자 보호 조처는 없었다. 조회 때마다 직원들을 향한 폭언이 계속되자 김씨는 지난 4월 퇴사했다. 곧장 고용노동청에 ㄱ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를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조사·조처 의무 위반으로 신고했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김씨의 기대와 달리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며 신고를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김씨가 통화녹음한 이 감독관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근로자가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해달라고 그랬다고 해서, (조사를) 안 했다고 (회사에) 과태료가 부과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관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조사를 하지 않을 때마다) 그때마다 과태료 부과되면 회사는 과태료만 맞다가 끝난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전제조건이 직장 내 괴롭힘이 범죄는 아니다”라며 “사업주에게 과태료 등 위반(의 책임)을 물으려면, 노동청이 공문을 보냈는데도 그 사람이 조사를 안 하고 조사기한은 지키지 않을 때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독관의 이런 설명은 사실과 달랐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이 신고되거나 회사가 괴롭힘을 인지했을 경우 △지체 없이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유지를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만약 괴롭힘을 회사에 신고하지 않고 노동청에 바로 신고했을 경우는 이 근로감독관의 주장처럼 노동청 공문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개정 법 시행령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난 상황에서도 근로감독관이 바뀐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사용자가 조사를 안 해도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잘못 알린 것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근로감독관이 법 제정 취지나 고용노동부 지침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며 지난 1~4월 근로감독관 관련 이메일 제보가 78건 들어왔다고 29일 밝혔다. 같은 기간 단체가 받은 제보는 767건인데, 이 가운데 10.2%가 근로감독관 관련 제보인 것이다. 권남표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장인들이 근로감독관에게 느끼는 부정적 인식이 정말 심각한데 고용노동부는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늘 근로감독관 인력 부족 탓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감독관과의 대화를 녹음할 것을 권고하는 한편, “근로감독관이 부실조사·무성의·직무유기·직권남용 등 소극행정을 했을 경우 해당 노동청에 기피 신청을 하거나 국민신문고에 소극행정 신고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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