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전국민중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 건너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를 허용하는 법원 판단이 여섯 건이나 나왔지만, 경찰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회 금지 통고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본안 소송 결과 나올 때까지 집무실 주변 집회가 사실상 ‘허가제’가 된 것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30일 정례간담회에서 “경찰 입장에서 본안 소송을 통해 법원 입장을 받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현재 입장을 유지할 계획”이라며 “법원 판결을 통한 법원의 확정된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고 그 결과에 따라서 내부적으로 집시 관련 법률 개정 등 필요한 조치들도 해야 할 거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1일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무지개행동)의 대통령 집무실 인근 집회를 조건부 허용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27일까지 6건의 집회금지 통고 집행정지 신청에 모두 집회 신고 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를 들어 대통령 집무실이 관저에 포함된다며 100m 이내 집회금지를 통고했지만 법원은 6차례 모두 집무실은 관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관저와 달리 집무실 앞은 집회·시위 자유가 일정 부분 보장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본안 소송을 위해 대형 법무법인 ‘광장’과 계약을 체결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현재 참여연대가 지난 21일 집회 신고를 하며 제기한 본안 소송 1건만 8월 중순으로 심리기일이 잡혀있다. 즉 앞으로 최소한 몇 달 동안 ‘집회신고→경찰 금지통고→법원 결정→집회 개최’등의 과정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졌다. 신고제인 집회가 사실상 법원의 결정에 따른 ‘허가제’로 바뀌게 된 것이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집시와 표현의 자유는 최소보장이 아니고 최대보장이 원칙인데, 당연히 보장해야 하는 권리를 제3자가 불필요한 절차를 통해 허가조처를 해야 되는 것처럼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며 “법원이 유권해석을 6번이나 했다면 본안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우선 허용하는 게 인권 경찰로 거듭나는 취지에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지개행동을 대리한 서채완 민변 변호사도 “금지통고라는 행정행위 자체로 권리 제약이 발생하는 경우 그 자체로 인권 침해 행위이자, 허가제로 운영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며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영역에서 국가는 위축효과를 방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이에 반할 뿐 아니라, 결정이 존중되어야 할 사법부 권한에도 반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경찰은 집시법을 개정해 집회·시위를 일정 정도 제한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도 이날 밝혔다. 김 청장은 “집시 권한도 존중돼야 하지만 집시로 인한 불편, 피해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교통정체와 소음으로 인한 평온권이 침해되는 것에 대해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하고, 내부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야에서 전직 대통령 사저나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낸 것을 포함해, 소음과 교통정체 등의 민원을 감안해 법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설명이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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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ji@hani.co.kr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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