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피해사실을 진술하면서도 피의자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는 절차가 마련된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피고인의 반대신문이 없는 피해자 진술 영상을 증거로 인정하는 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내린 뒤 6개월여 만에 나온 후속 조처다.
법무부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맞춤형 증거보전절차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개정안이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29일 밝혔다. 법무부는 조만간 이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수사과정에서 미성년 피해자의 진술을 영상 녹화를 했을 때 원칙적으로 증거보전절차를 진행한다. 증거보전절차는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판사가 증인신문 등의 증거 조사를 진행해 미리 증거를 확보해두는 절차다. 판사가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고 수사 단계에서 진행된 피해자 영상녹화를 본 뒤, 필요할 경우 피고인 쪽 반대신문을 진행해 증거로 삼겠다는 취지다. 공개된 법정에서 추가 증언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피해자 쪽 2차 피해를 차단하면서, 피고인의 반대신문권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또 피해자 신문은 전문적 교육을 받은 전문조사관이 아동 친화적인 공간에서 간접적으로 진행해, 공격적인 반대신문 등 2차 피해를 최대한 차단하겠다고도 밝혔다.
법무부가 마련한 대안은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성폭력처벌법 일부 조항을 위헌 결정한 뒤 나온 후속 조처다. 헌재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녹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조항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을 두고는 미성년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와 피해를 증언해야 하는 등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을 두고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 한계 역시 또렷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서울의 한 판사는 “수사 초기에는 쟁점도 잘 형성되지 않고, 피고인의 변호인 등이 선임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증거보전절차를 거쳤더라도 정식 재판에서 다시 피고인이 방어권 보장을 요구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미성년 피해자는 증거보전절차에 이어 법정 증언까지 오히려 더 많은 진술 절차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다른 판사는 “현재 법체제에서 만들 수 있는 고육지책으로 현실적으로 차선책은 되는 듯 싶다”면서도 “증거보전절차가 현실적으로 자주 쓰이는 절차가 아니기 때문에 제도가 잘 작동할지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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