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학교 곳곳에 붙인 학내 청소·경비 노동자 투쟁 지지 대자보.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소음으로 수업권이 침해됐다”며 학내에서 시위 중인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에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학생 개인이 진행한 소송을 연세대 전체의 입장으로 보지 말아달라”며 대자보와 연서명을 통해 청소노동자들 연대에 나섰다.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이아무개(23)씨 등 3명은 최근 김현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장과 박승길 부분회장을 상대로 수업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서부지법에 제기했다. 지난 3월28일부터 임금 인상과 샤워실 마련 등을 요구하며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학내에서 집회를 벌이자 학생들이 집회 소음 등을 문제 삼으며 형사에 이어 민사소송까지 나선 것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노조의 교내 시위로 1~2개월간 학습권을 침해받았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모두 638만6000여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등록금과 정신과 진료비뿐 아니라 ‘미래에 겪을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고려한 정신적 손해배상액(1인당 100만원)’ 등이 포함됐다. 이는 연대 청소노동자 월급의 3.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앞서 이들은 지난달 9일 청소노동자들이 미신고 집회를 열었다며 업무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한 바 있다.
지난 13일 연세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개최한 학내 집회에서 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제공.
15년째 학교에서 농성을 벌여왔던 노조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김현옥 분회장은 30일 <한겨레>에 “15년째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농성을 해왔지만, 생전 처음 있는 일이라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소리가 중앙도서관이 아닌 학생회관을 향하도록 바꿨고, 음량도 낮춰 집회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미신고 집회라는 주장에는 집회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협력업체 노동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쟁의행위를 하는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2020년 대법원 판결에 따랐다는 입장이다. 김 분회장은 “고소한 학생들도 있지만, 함께 연대 발언을 해주거나 응원한다며 음료수를 건네주는 학생들도 정말 많다”고 했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학교를 다니는 우리 모두가 청소·경비노동자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음을 기억하며 연세대학교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고, 학생들의 연서명을 받고 있다. 이날까지 학생과 졸업생, 시민 2300여명이 연서명에 참여했다. 공동대책위는 연서명을 첨부한 성명문을 학교 총무처에 전달했다. 공동대책위 활동가인 해슬(22·사회학과)씨는 “대다수의 학생은 불편하더라도 학교가 해결해야지, 학생들이 나서서 사법 만능주의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라며 “2300명이 넘는 분들이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내고 있는데, 학생 개인이 진행한 소송을 연대생 전체나 우리 세대가 모두 이기적이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갈등이 커지자 지난달 20일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학내 시위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수합할 수 있는 온라인 창구를 개설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함형진 비대위원장은 “집회로 인해서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의견도 모이고 있다”며 “일단 모아진 의견들을 바탕으로 향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따로 만들어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나선 사이, 학교는 문제 해결에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송승환 조직부장은 “학교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방관하지 말고 해결에 나서야 할 책임이 있지만, 아무런 입장조차 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슬씨도 “학생들이 아닌, 학교에서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담아 연대 서명문을 학교 총무처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 쪽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연세대 관계자는 “학교와 노조와의 문제가 아니라 용역 업체와 노조와의 임금 협상 문제”라며 “원청인 학교가 아예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내 집회를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다 보니 학교와 학생이 모두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한 “학교 입장에서는 어떤 학생들이 옳다고 편을 들 수도 없고, 법적으로는 미신고 집회가 맞지만 갈등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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