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저동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경찰의 성매매 여성 알몸촬영, 위법한 채증과 수사 관행을 규탄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저는 경찰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얼굴이 나온 알몸 사진이 여기저기 떠돌까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성노동자인 ㄱ(22)씨 오피스텔로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서울경찰청 풍속수사팀과 송파·방배경찰서 경찰관들로 꾸려진 성매매 합동단속팀이었다. 당시 ㄱ씨는 알몸으로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고 성매수 남성도 함께 있는 상황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경찰관은 ㄱ씨를 휴대폰으로 세 차례 촬영했다. 경찰은 몸을 가릴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ㄱ씨는 “왜 찍냐”며 사진을 지워달라고 거듭 요청했으나, 경찰은 “다 찍혔으니까 빨리 (진술서) 쓰고 끝내자”고 압박했다고 한다.
ㄱ씨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경찰의 성매매 여성 알몸촬영, 위법한 채증과 수사관행 규탄’ 기자회견에 직접 나섰다. “알몸으로 담배를 피고 있는 사진이 성매매 수사에 꼭 필요한 사진인가. 성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인권 유린을 감내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저는 다른 성매매 여성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당시 ㄱ씨는 경찰 조서에 “얼굴이 나온 알몸 사진이 어딘가에서 나돌고 있을 생각을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모멸감이 든다. 제가 항의해도 사진을 찍힌 것은 달라지지 않고 평생 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사진을 찍은 그 형사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적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알몸 사진이 합동단속팀 업무용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까지 올라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유출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증폭됐다. 담당 경찰관이 조사 과정에서 “사진은 단톡방에서 다 지웠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단체대화방에 알몸 사진을 올렸던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ㄱ씨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듯 말해준 게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 모든 사람이 저를 쳐다보며 ‘이 사진이 너야?’하고 제 몸을 조각조각 나눠 평가하는 꿈을 꾼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이같은 경찰의 성매매 여성 알몸 촬영이 적법절차원칙과 최소침해원칙을 위반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단체들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알몸 촬영은 자백 강요나 수사 편의를 위한 것으로서 적법절차를 위반한 강제수사일 뿐 아니라, 성매매 여성의 인격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이며, 성폭력특별법 제14조 제1항에 따른 카메라등이용촬영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지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촬영된 것은 성매매 여성이 탈의한 상태로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다. 성매매행위에 관한 증거가 아니다. 경찰의 성매매 여성 알몸 촬영은 법원의 영장 없이 사법통제를 피해 오랜 기간 관행적으로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성매매 여성 신체 불법촬영 중단 △보관 중인 성매매 여성의 알몸 촬영물 또는 복제물 영구적 삭제·폐기 △촬영물 전송·저장·복제 여부 및 위법성 여부 수사 △촬영 및 촬영물 보관·관리 지휘·감독 책임자 징계 등을 요구했다.
경찰은 현행범 수사를 위한 적법한 절차였다고 반박했다. 오기덕 서울경찰청 생활질서과 풍속단속계장은 “현행범 수사에서 단속 현장 촬영은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단속 현장 사진은 내부지침에 따라 송치 시 삭제하고 있고, 본건 사진도 삭제돼 외부유출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단체대화방에 유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선 경찰서와 합동단속반이 크게 꾸려지다보니 실시간 단속 현황을 통제하기 위해 단체방에 업로드됐던 것이 맞지만, 단속이 끝나고 나서 모두 폭파시켰다”고 했다.
이에 대해 ㄱ씨는 “단체대화방에서 폭파가 가능한건지, 정말 그 사진이 완전히 사라진건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두렵다”고 했다. 무화(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는 “사이버성폭력은 불안을 동반한다는 속성을 지닌다. 특히 사진이나 촬영 등과 같이 이미지가 이용될 경우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사이버 공간 안에서 내가 인지할 수 없는 때와 장소에서, 나의 신체 촬영물이 불특정 사람들 속에서 돌아다닐 수 있고, 편집 및 합성 등 가공될 수 있다”고 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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