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투쟁 인권운동 긴급대응팀 주최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긴급인권보고서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하청) 회사는 인력관리업체에 불과해요. 아무것도 투자하는 게 없어요. (…) 실제로 (하청) 업체 대표는 적자라고 해요. (기성금을) 오픈하지 않으면서. 제일 손쉽게 줄일 수 있는 게 임금이라는 거죠.” (대우조선해양 상용직 용접원 ㄱ)
“발판공의 40∼50%는 최저 시급을 받아요. 6년간 딱 한 번 (시급을) 올려줬고, 최근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니까 400원 올려주더라고요. 처음에는 최저 시급이 아니었는데 임금을 계속 묶어두니 이렇게 된 겁니다.” (대우조선해양 시급제 발판공 ㄴ)
인권단체들이 50일째 파업을 이어가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 소속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긴급 인권보고서에 담긴 현장의 목소리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투쟁 인권운동 긴급대응팀’은 이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발표한 인권보고서에서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은 복잡한 다단계 고용구조와 이로 인한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인 채 장기간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파업은)더는 희생과 착취에 기반을 둔 후진적인 고용구조와 산업구조, 노동 3권의 공백 상태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 산업은행과 정부는 투쟁 중인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을 멈추고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하며, 평화적 해결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는 지난 2주 동안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조사하고, 파업 중인 하청노동자들을 심층 면접한 내용이 담겼다.
대응팀은 파업의 배경으로 조선업체의 높은 사내 하청 비율을 꼽았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는 노동자 약 2만명(2021년 기준) 중 정규직이 8500명, 비정규직이 1만1500명이다. 조선업은 꾸준히 사내하청을 늘려왔는데,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소조선소에서 구조 조정된 인원들이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든 대형조선소의 하청노동자로 대거 편입됐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는 100여개에 달하고, 하청노동자는 무기계약직(본공), 단기계약직(일당공), 물량팀(특정 공정의 업무를 일정 기간 수행하는 팀), 돌관팀(단기간 웃돈을 얹어서 업무 수행하는 팀) 등으로 다시 나뉜다.
높아진 하청업체 비중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도 제각기 달라졌고, 위험의 외주화도 심해졌다는 것이 대응팀의 지적이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하청노동자들은 아파서 산재를 신청하려고 해도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봐 신청하지 못한다. 사고재해는 원청노동자가 하청노동자보다 20% 더 많지만, 사망사고의 경우 하청이 원청의 10배라는 것은 산재 은폐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파업에 돌입한 하청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인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농성이 벌어지는 현장에 관리자와 정규직 노동자들이 들어오며 갈등과 폭력이 벌어졌고 대우조선해양이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이광훈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은 “자녀들과 후배,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고 싶어서 파업을 시작했다”며 “전면 파업을 시작하고 이틀 만에 들어온 구사대가 ‘대우조선의 땅에서 나가라’고 하더라. 벌레 보듯이 바라보는데, 우리가 이런 취급 받고 있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도크 위 철제 구조물에 들어간 유최안 부지회장은 스스로 자신을 가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노노 갈등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평화적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하청지회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와 대우조선해양 쪽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용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들과 계약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교섭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국제노동기구와 대법원, 노동법 학계, 중앙노동위원회 등은 노동조건의 실질적인 결정 권한이 있는 원청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지위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지회의 쟁의행위는 정당하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대우조선 노사 협상에서 원청이 ‘배임죄 처벌 가능성’을 근거로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계획 철회를 거부한 것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면책 합의를 두고 배임으로 사용자를 기소하기는 커녕 수사했다는 전례가 없다”며 “형법상 배임죄는 임무 위배 행위라는 사용자의 행위가 있어야 하고 손해가 발생해야 하는데, 헌법과 노동조합법상 지금의 쟁의 행위는 정당하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원청이 실질적인 노동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있으면 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에 중대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조선업을 도급 금지 또는 도급 승인 작업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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