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커버스토리 : 세종대·세종호텔 어디로?
‘설립자 아들’ 주 이사장, 교육부 임원취소에 맞불 소송 복귀 길 열려
‘세종민주화 투쟁’ 박춘노,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의 깊은 고뇌
“황망하고 실망스러워”…대학 쪽 “주 이사장 개입 없고, 해고는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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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세종대 앞에 주명건 전 대양학원 이사의 퇴진을 요구하는 세종호텔 노조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춘노, 1979~1995년 박춘노는 동급생보다 8살 많은 나이로 1979년 세종대 경상학부에 입학했다. 주명건이 이 학교에 교수로 부임한 이듬해였다. ‘서울의 봄’이 찾아온 2학년 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엉겁결에” 과 대표를 맡았고, 당시 대학가에 불던 학원 민주화 열풍에 따라 세종대에도 만들어진 총학생회 부활추진위원회 위원장도 맡게 됐다. 이게 “인생의 갈림길”이 될 줄 그땐 몰랐다.
지난 15일 서울 성북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춘노 세종대 정상화 투쟁위원장. 이정용 선임기자
고진수, 2001년 고향인 경북 구미시의 한 반도체 공장 생산직으로 일하던 고진수가 요리에 빠져든 건 25살 때였다. 한 식당에서 맛본 만두와 김치에 빠져 그곳에서 1년 동안 음식을 배웠다. 자기 식당을 차렸지만 장사가 잘 안됐다. 2년 만에 가게를 접고 서울에 와 일식당 몇곳에서 일하며 일식에 눈을 떴다. 그러다 2001년 11월, 지인 소개로 자리 잡은 게 세종호텔 일식당이다. 계약직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정규직과 임금 차이가 별로 안 났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도 많았다. “호텔에서 일한다는 기대감과 자부심”도 컸다. 바쁜 일과 틈틈이 공부하고 기술을 닦아, 일식조리기능사와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노력을 인정받았는지 2년6개월 만에 정규직도 됐다.
21일 서울 퇴계로 세종호텔 근처에서 사진 취재에 응한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이정용 선임기자
전쟁, 1997~2004년 주명건이 이사장에 오른 뒤, 세종대에선 1990년 교수협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교수 여러명이 재임용에서 탈락하거나 사직을 강요당했다. ‘여성의 머리가 너무 크다. 8등신으로 바꾸라’는 주명건의 지시를 거부하고 원래대로 만든 모자상을 설치한 김동우 회화과 교수도 2001년 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김 교수는 법정 투쟁과 1인시위로 맞서며 버텼고, 교수단체와 재학생, 동문들이 지지 대열에 동참했다. 박춘노가 다시 ‘세종대 문제’에 개입한 건 이 무렵이다. ‘세종대 재단 퇴진과 김동우 교수 복직 투쟁위원회’를 만들었고, 주명건 등 학교법인 이사진의 문제를 찾아내 교육부에 감사를 청구했다. 비슷한 시기인 2003년 11월, 주영하·최옥자 부부는 세종대 구성원들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장남을 “물질에 탐욕스럽고 권력에 비굴한 인격 파탄자”, “패륜” 등으로 지칭하며 “주명건이 재단과 그 산하 모든 기관을 자신과 그 가족의 것으로 사유화하려는 거대한 음모”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사장직 불법 중임, 세종투자개발 회계 부정, 세종대 교비 유용 및 횡령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교육부는 2004년 가을 벌인 종합감사 결과, 수익사업 관리 태만으로 약 46억원 보전, 이사장 인건비 집행 부당으로 약 4억원 회수 등 약 113억원의 재정상 조치를 대양학원과 세종대에 내렸다. 대양학원은 세종투자개발 주식 100%를 학교 운영을 뒷받침할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관리한다.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은 대학설립·운영규정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의 수익을 내야 하고, 이 가운데 일정 부분을 교비회계로 전출해야 한다. 수익용 기본재산이 주식이라면 수익은 배당이다. 그런데 당시 감사 결과 대양학원은 1998~2003년 세종투자개발에서 단 한차례도 배당을 받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명건과 그의 부모 등은 세종투자개발과 출자회사 등에서 회장 등의 직함으로 약 38억원의 보수를 받아갔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세종투자개발 임원의 책무성을 강화할 방안과 수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강구”하라는 ‘개선’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배당을 받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수익사업 관리 태만’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2013년 회계감사, 2019년 종합감사에서도 똑같이 지적된다. 세종투자개발 등의 임원으로 주명건 등이 보수를 받아간 것도 여전했다.
지난 19일 서울 세종대 앞. 이정용 선임기자
절반의 성공과 반격, 2005~2013년 주명건은 이사장직을 사임했다. 대양학원은 함세웅 신부,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정태상 변호사 등이 포함된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다. 박춘노는 이때 김호진 이사장의 추천으로 학교법인 사무국장을 맡게 된다. 뒤이어, 부동산 불법매각 등의 문제가 불거져 세종투자개발 이사진도 교체됐다. 임시이사들은 김동우 교수 등 해직 교수 6명을 복직시켰다. 세종호텔에선 그 전까지 2~3%대에 머무르던 임금 인상률이 11% 선으로 올랐다. 하지만 박춘노는 “대양학원 이사진 다수가 주명건이 채운 사람들이라, 해직교수 복직 말고는 크게 개혁적인 조치도 못 했고, 세종대 정상화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주명건과 가까운 최승구 전 대양학원 사무총장은 <월간조선> 2007년 2월호에서 ‘교육부 제안으로, 새로 선임하는 이사 가운데 3명을 주명건이 추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이사진은 기존 정이사 2명까지 포함해 주명건 쪽이 1명 더 많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전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주명건은 한반도 대운하 주창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2007년 말 설치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2009년 6월에 6개월 기한으로 새 임시이사들을 보냈는데, 안종범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보수 인사거나, 주명건과 가까운 이들이었다. 이들은 취임 한달 만인 7월13일, 세종투자개발 이사진 교체 권한을 대양학원 이사장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고, 나흘 뒤인 7월17일 주명건은 세종투자개발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듬해 사분위는 주명건 쪽이 대부분인 정이사들로 세종대를 ‘정상화’시켰고, 주명건은 대양학원 명예이사장에 위촉됐다. 2013년부터는 이사직을 맡아, 교육부 종합감사로 자격이 상실된 2021년 2월까지 쭉 자리를 유지했다. 박춘노는 6개월 임시이사진이 오기 전 1년 가까이 이어진 이사진 공백기에 학사 운영 마비를 막으려고 교육부 문의를 거쳐 업무를 했지만 2009년 직권남용 등으로 해임당했다. 4년이나 걸린 해임 무효 소송에선 최종 승소했지만, 정년퇴임 직전에 판결을 받아 끝내 다시 출근하진 못했다. _______
구조조정, 외주화, 정리해고… 2009~2022년 주명건이 돌아오면서, 호텔 직원들의 부침도 서서히 본격화됐다. 고진수가 요리를 하던 일식당이 중식당으로 바뀌었다. 공항이나 병원, 은행 등의 식당을 운영하는 외식사업부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고진수도 2년 가까이 한 은행의 상설뷔페에서 일하다 그곳이 문을 닫자 본사로 돌아왔는데, 배치된 곳은 일식당이 아닌 한식뷔페였다. 그렇게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부서가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이전 경영진과 맺었던 5년짜리 고용안정협약, 비정규직 1년 근무 뒤 정규직 전환 단체협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맨 오른쪽)이 21일 서울 퇴계로 세종호텔 근처에서 다른 조합원들과 선전전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그리고 미래 박춘노와 고진수, 이들의 오랜 고통과 질문은 결국 대양학원과 세종호텔에서 ‘주명건의 실질적 영향력’에 가닿는다. 주명건이 명예이사장일 때 세종대 총장을 지냈던 박우희 전 총장이 퇴임 직전인 2012년 7월25일 한 얘기다. “밖에서 명령을 하는 사람이 있다. 총장이지만 인사를 한 적이 없고, 총장이 사인하지 않고 집행된 걸 나중에 알고 내가 호통을 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행동, 얘기가 그날 다 보고가 올라가, 총장은 어항 속의 금붕어였다.” 같은 날, 주장건 전 세종투자개발 대표는 “주명건이 학교를 하나의 재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투자개발과 주명건을 정점으로 소유 구조가 얽혀 있고(그래픽 참고), 이들 사이 여러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투명하게 감시하기 어려운 점 역시 이들이 주명건에게 책임을 묻는 배경이다. 가령 세종투자개발은 모두 10개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모두 학교와 호텔 관련 사업체다. 세종호텔 주차장 관리와 객실 정비를 하는 케이에이치알뿐만 아니라, 조경은 한국화목종묘, 식자재 납품은 케이티에스씨나 케이에프에스가 맡는 식이다. 주명건 부부가 대주주인 세종에스엠에스는 호텔 경영 자문과 식음료사업 위탁 운영, 인력 공급 등을 하는 회사여서 노조와 세정투위 쪽에선 세종호텔 정리해고·외주화의 종착지가 이곳이 될 거라고 추측한다. 한편, 주명건의 아들은 세종투자개발이 지분 76.21%를 가진 케이티에스씨와, 이 회사가 지분 51%를 가진 코빅푸드의 등기이사다. 하지만 세종투자개발은 교육부 감사 대상의 하나인 ‘수익사업체’로 등록돼 있지 않다. 그 주식만 대양학원의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관리될 뿐이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런 점 때문에 세종호텔의 재무 상태를 들여다보기 어렵고, 주명건 등 설립자 일가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해 세종호텔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그 실체를 들여다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사실상 형식적인 책임을 면한 채 세종호텔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며, 세종호텔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세종대 관계자는 “세종호텔은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가 5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경영이 어려워,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정당한 해고로 판정했다. 주명건이 학교법인이나 세종호텔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건 사실과 전혀 다른 일방적인 주장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세종에스엠에스가 세종호텔 식음사업 등을 맡을 거란 얘기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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