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퀴어’ 소재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가 부쩍 늘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드라마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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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이 10년을 붙어 다녔는데, 아빠는 눈치도 못 채잖아. 이 사람 그냥 언니 아냐, 그냥 선배 아냐. 결혼을 해야 한다면 언니랑 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랑 할 거야.”
지난달 30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흘러내린 웨딩드레스’ 편의 결말은 유쾌한 반전이었다. 이날 드라마에선 재벌가 2세들의 정략결혼식에서 생긴 뜻밖의 웨딩드레스 노출 사고 탓에 결혼이 파혼으로 번지고, 우영우(박은빈) 변호사의 활약으로 신부 쪽은 수십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사실상 승리하게 된다. 이때 한번 더 깜짝 반전이 일어난다. 아버지에게 억눌려 살던 재벌가 딸 화영이 다 이긴 소송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학교 ‘언니’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는 아버지를 뒤로한 채 진짜 결혼 상대로 생각한 언니와 손을 잡고 법정을 떠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 변호사 옆에 또 다른 사회적 소수자인 퀴어 커플을 등장시켜, 남다를 것 없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해피엔딩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방송 쪽에선 이제껏 소극적이거나, 무겁게 다뤄온 퀴어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끈다. 오티티 채널 ‘웨이브’가 지난 8일 처음 공개한 <메리 퀴어>는 국내 첫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를 표방한다. 실제 동거 중인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커플 3쌍이 이성 커플과 다를 것 없이 서로 사랑하며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동성 커플이 구청에 낸 혼인신고서가 ‘남녀’ 커플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등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20여년 전, 연예인으로 국내 첫 커밍아웃을 한 홍석천씨가 진행자의 한명으로 나서 한국에서 성적 소수자로 헤쳐온 어려움들을 설명하며 공감 폭을 넓힌다.
지난 15일엔 또 다른 퀴어 소재 프로그램 <남의 연애>(웨이브)가 방송을 탔다. 남자 6명이 한집에서 지내며 호감 가는 상대를 찾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다. ‘과감한 남자들의 솔직한 연애 리얼리티’라는 소개글을 달았다. 랜덤카드 뽑기로 첫 데이트 상대를 고르거나, 호감남과 30초 통화 기회를 주는 이벤트 등 보통의 연애 예능과 다르지 않다. 이 밖에 오티티 ‘시즌’은 국내 첫 비엘(BL·보이스 러브) 시트콤 <하숙집 오!번지>를 7일부터 방송하고 있다. 다섯 남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연애 감정과 일상생활에 웃음을 버무려냈다. 티빙은 비엘 웹드라마로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나의 별에게> 두번째 시즌을 지난달부터 방송하고 있다. 또 다른 주요 오티티인 ‘왓챠’ 역시 비엘 드라마 <올드패션 컵케이크>를 내놨고, 뒤이어 비슷한 소재의 <신입사원>도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퀴어 소재 프로그램들이 오티티 등을 통해 조금씩 늘어나는 데 대한 의견은 “불편하다”, “오히려 내가 위로받는다” 등으로 엇갈린다. <메리 퀴어> 진행자인 개그맨 신동엽씨처럼 여러 삶의 방식의 하나일 뿐, 좋거나 나쁨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의견도 많다. 신씨는 첫 방송에서 “처음 이 프로그램을 한다고 그랬을 때 깜짝 놀랐다. ‘진짜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졌구나, 다름을 인정하게 되는구나, 점점’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 그냥 바라보면서 ‘저런 삶도 있구나’ 담담하게 지켜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