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성인 아들과 대한항공 항공기에 탔다가, 기장으로부터 승객 안전을 이유로 이륙 전 내릴 것을 요구받은 ㄱ씨의 사연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대한항공은 ㄱ씨의 아들이 착석 요구 등 승무원의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며 “당사는 다른 모든 승객과 동일하게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승객의 경우에도 탑승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안전운항이 저해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모든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승객 하기(항공기에서 내림)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ㄱ씨는 탑승수속 과정에서 아들의 자폐를 알렸다고 주장했지만, 대한항공은 “해당 승객의 경우 사전에 예약, 탑승수속 카운터, 탑승구에서 자폐 스펙트럼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밝혔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항공사 입장에선 불가피한 조처였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신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자폐성 장애를 가진 승객들을 대하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매뉴얼 정비 등 지원 서비스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 항공사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등 발달장애인을 고려한 매뉴얼을 마련하거나, 항공기 탑승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1일 국내 주요 항공사의 누리집을 살펴보면 장애인 승객 지원 서비스는 대부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외국 항공사는 신체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만 지원하는 국내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를 지원하는 별도 체계를 마련하고 누리집에 공개한다.
영국 국적기인 영국항공과 아일랜드 국적기인 에어링구스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승객을 위한 별도의 시각 지침을 만들어 안내한다. 이들 항공사들은 간단한 그림과 사진을 통해 비행 전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감각이 예민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에게 공항과 항공기 안에서 겪는 소리와 냄새, 풍경 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항공 누리집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영국항공은 출발 24시간 전까지 항공사에 연락한다면 원하는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히드로 공항에 있는 영국항공 전용 장애 지원 탑승 수속 구역에는 녹색 바탕에 해바라기가 그려진 끈 목걸이가 비치돼있어, 이를 착용한 승객은 추가 지원이나 시간이 더 필요한 고객임을 알려 직원이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비행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나라도 있다. 미국의 발달장애인 지원단체인 ‘아크(The Arc)’는 매년 미국 각지의 공항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등에게 발권, 보안검색대 통과, 대기, 항공기 탑승 등 비행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은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항공사와 공항 직원, 미국 교통안전청(TSA) 직원들도 이들을 지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미국 항공사 아메리칸 에어라인도 지난 2014년부터 1년에 두번씩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인 ‘ICTFA(It's Cool to Fly America)’를 운영하고 있다.
국외의 여러 공항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있는 사람 등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확대하는 추세다. 영국 개트윅·히드로·브리스톨 공항, 미국 애틀랜타·마이애미·피츠버그·포틀랜드 공항 등에서는 감각에 과민한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기다릴 수 있도록 조용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위해 영국항공이 제작한 시각안내물. 영국항공 누리집 갈무리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