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대학교 생활관 폭행 사건이 당초 학교 쪽 설명과 달리 전치 12주 환자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폭행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다, 생활관 사감실에 하키채를 비치하는 등 일상적으로 폭력이 발생했을 정황도 포착됐다. 스포츠 폭력 사각지대로 남은 한국체육대학교(이하 한체대) 생활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5월25일 한체대 역도부 조교이자 남자 생활관 사감인 최아무개 코치는 밤 10시께 생활관 2층 복도에 역도부 학생 19명을 집합시킨 뒤 1시간 넘게 얼차려를 주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 최 코치는 욕설과 함께 하키채로 학생 6명의 머리, 목 뒤, 팔을 내려찍는 등 폭행도 가했다.
이 폭행으로 한 학생은 뇌진탕을 당하고 신체 일부 마비가 오는 등 전치 12주 부상을 입었다. 최 코치는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내가 너희 운동 못 하게 할 수도 있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앞서 <한겨레>는 서울 송파경찰서가 해당 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나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 코치의 폭력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2021년 5월에도 새벽에 잠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역도부 학생 18∼19명을 복도로 불러내 3시간가량 팔꿈치를 땅에 닿게 한 채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게 했다. 2021년 7월엔 남자 생활관 2층 방에서 학생 한 명을 하키채로 수차례 때렸다. 폭행 때마다 사용된 하키채는 1층 사감실에 상시 구비돼 있었다.
생활관 폭행 사건을 처음 보도할 당시 조준용 한체대 교무처장은 해당 사건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며 “하키채를 썼다고 하더라도, 그저 학생들 군기를 잡는 정도였다”고 했다. 또 “학생들은 지금 (학교에) 나와서 운동도 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 쪽 설명과 달리, 2년 동안 수차례 폭행·가혹 행위가 벌어졌고 뇌진탕으로 전치 12주 진단을 받은 중상자까지 있었다.
그간 운동부 합숙소는 ‘스포츠 폭력 온상’으로 꼽혀왔다. 이 때문에 초·중 ·고등학교는 ‘학교체육진흥법’에 따라 합숙소 운영에 각종 제한을 받지만, 한체대는 대학이기 때문에 예외에 속한다. 더욱이 한체대 스포츠과학대학의 체육학과와 경기지도과 학생은 ‘국립학교 설치령’에 따라 재학 중 생활관에 입관해 생활훈련을 받아야 한다. 생활관이 사실상 운동부 합숙소나 마찬가지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현행 제도상으론 (한체대를 포함한) 대학 내 스포츠 폭력은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생활훈련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관 입소는 휴식이 아닌 합숙을 통한 성적 향상에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생활관에는 오로지 체육 특기생만 있는데다, 코치와 학생 혹은 선배와 후배가 훈련 뒤에도 함께 생활하다 보니 훈련장 위계질서가 생활관까지 이어진다. 일상적인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폐쇄적 구조다. 스포츠 존재 이유가 곧 ‘국위선양’이던 1976년 만들어진 법이 2022년 학생들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생활관 운영 방식도 문제다. 정원 900명에 달하는 한체대 생활관은 현재 약 800명 가까운 학생이 등록돼있다. 생활관 업무는 사감 3명이 도맡아 처리하는데, 전문 사감이 아니라 대학 조교들이 맡는다. 생활 관리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생활관장-사감-학생이 모두 학내 체육학과 인맥으로 얽혀있어, 문제가 생기면 은폐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사실상 외부 감시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번 역도부 폭행 사건 때도 한체대는 국민체육진흥법이 명시한 “폭행 인지 즉시 신고해야 한다”는 의무를 어기고 학생·학부모 쪽에 고소취하를 요구해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체대는 <한겨레> 보도가 나온 뒤에야 스포츠윤리센터에 사건을 신고했다. 한체대 생활관 관장은 2021년 2월부터 염아무개 역도부 지도교수가 맡고 있다.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관장, 가해 사감, 피해 학생 모두 역도부 소속이다. 학생들이 받는 압박감이 심할 수밖에 없다. 실제 고소에 나섰던 6명 가운데 5명은 결국 고소를 취하했다.
한체대 생활관에서 폭력 문제가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9월엔 카누부 학생이 술에 취해 1학년 선수를 2시간 넘게 폭행해 대한카누연맹에서 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 2018년 3월엔 수영부 4학년 3∼4명이 신입생과 2학년 등 30여명에게 바닥에 머리 박기 등 상습적 가혹 행위를 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2019년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한체대 육상부 1∼3학년 학생들이 4학년 주장과 조교 강요로 생활관 청소·빨래를 도맡고 가혹 행위를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2020년에도 한체대 핸드볼부 신입생이 생활관에서 선배들에게 수시로 맞고, 강제로 스타킹을 신은 채 다른 방을 돌아다니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한체대 생활관 내에서 학생들 휴대전화를 걷거나 머리카락 길이까지 제한하는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가 벌어졌으며, 지도교수·조교가 해당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방치하거나 오히려 직접 그런 행동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름을 밝히길 원하지 않은 한 한체대 체육학과 학생은 “우리도 어엿한 성인인데 귀가나 외박조차 자유롭지 않을 정도로 압박이 심하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합숙 문화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허정훈 중앙대 교수(체육학·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과거에는 메달을 따기 위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곳으로 (생활관을) 규정했지만,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 선수들에게 선택 기회를 줘야 한다. 법 개정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운동부 학생들을 운동부에 몰아넣는 게 아니라 개방을 해야 한다. 일반 학생과 함께 생활하고, 체육 특기생도 기숙사 생활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