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기획
은둔·고립 청년 지원 ‘두더지땅굴’
은둔 청년 껴안는 ‘두더지땅굴’
상담·소통·인터뷰 등 참여하며
당사자 교류하는 온라인 플랫폼
“은둔 경험 직업으로 연결 고민”
은둔·고립 청년 지원 ‘두더지땅굴’
은둔 청년 껴안는 ‘두더지땅굴’
상담·소통·인터뷰 등 참여하며
당사자 교류하는 온라인 플랫폼
“은둔 경험 직업으로 연결 고민”
은둔·고립 청년들을 위한 온라인 소통 플랫폼인 ‘두더지땅굴’을 만든 이은애 ‘씨즈’ 대표(왼쪽)와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청년허브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두더지땅굴’에 접속하면 두두아파트·두두아지트 등 은둔·고립 청년들에게 도움 될 만한 내용이 많다. 두더지땅굴 누리집 갈무리
기획부터 검수까지, 고수들 적극 참여 두더지땅굴은 은둔을 넘어, 고립된 청년까지 대상으로 포괄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연결망이 느슨해진 상황해서 일자리마저 없어 고립된 청년들이 은둔으로 향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이트를 준비하면서는 은둔·고립 청년들이 세상을 마주하는 첫 문이자, 최후의 보루일지도 모르는 이 공간에서조차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단어 하나하나 검토했다. 오쿠사가 설명했다. “사이트에 반감을 가질 부분은 없는지 은둔 경험자들과 수차례 회의를 거쳤어요.” 두더지땅굴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사이트도 친숙하게 구성했다. 두두아파트, 두두아지트, 두두테스트, 상담코너 등 다섯개 카테고리로 나눴다. 두두아파트 지하 1층엔 고립·은둔 청년 릴레이 인터뷰가, 지하 2층엔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지하 3층엔 은둔 경험자와 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책 도서관’이 있다. 실제 은둔·고립 청년들에게 도움 될 내용들이다. 게시판, 나눔마켓 등으로 구성된 두두아지트에선 서로 느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역시나 두두테스트다. ‘나는 사랑과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등 25개 질문을 통해 은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은둔 경향도가 90%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은둔 고수 중의 고수로, 우화를 기다리는 번데기형이니까. “안전한 곳에서 충전하면서 때를 기다려요. 은둔 고수가 빛나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라는 답을 듣고 자신을 긍정하면 된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정서적 돌봄을 받지 못하고 성인이 된 ‘성인아이 테스트’에서는 화해자, 피에로, 잃어버린 아이 등 여덟가지 모습에서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 유형에 따라 조키(두더지)·토토(토끼)·포포(개구리) 등 두더지땅굴에서 사는 동물 캐릭터가 튀어나온다. 수개월에 걸친 사이트 제작 작업에서 중요시한 건 ‘당사자 참여’다. 이 대표는 “대부분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체는 전문가 중심의 상담 기반이에요. 저는 문제 해결에 대한 해법도 당사자가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사자들이 서로를 지원하면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봤어요.” 두더지땅굴에선 은둔도 ‘스펙’인 셈이다. 은둔을 경험한 ‘은둔고수’들은 사이트 기획부터 마지막 검수 단계까지 참여했다. 은둔 경험자가 다른 은둔·고립 청년을 인터뷰하고, 웹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이트 제작에 참여한 은둔 경험자들로부터 ‘게시판 지기를 하고 싶다’, ‘두두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역제안을 받기도 했다. “고무적이었죠.”(이 대표) 두더지땅굴이라는 이름도 은둔 당사자의 아이디어였다. 오쿠사는 “온라인 에스오에스(SOS)센터, 은둔 기지, 베이스캠프 같은 명칭도 후보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지하 생태계에서 두더지들이 뭘 할지 상상하면 재미있잖아요. 그래서 두더지땅굴로 결정했어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막상 두더지땅굴이라는 이름을 제안해놓고도, 망설인 쪽은 유 대표였다. “두더지가 좋은 이미지가 아니잖아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만 더 주는 건 아닐지 걱정했어요.” 유 대표의 걱정은 노파심으로만 보긴 어렵다. 그간 사회는 은둔형 외톨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왔기 때문이다. ‘나약하다’ ‘게으르다’는 비난은 은둔형 외톨이의 연관어였다. 하지만 이를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게 유 대표와 이 대표의 공통된 생각이다. 실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1년 청년 사회·경제실태조사 기초분석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만 18~34살 2041명 중 ‘보통은 집에 있지만 인근 편의점 등에 외출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3.6%이다. 2017년 2.6%에 견줘 1%포인트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국내 은둔 청년 규모를 약 37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청년 고독사 문제도 심각하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내용을 보면, 40살 미만의 청년 고독사는 2017년 63명에서 2020년 102명으로 62%나 급증했다. 청년층의 사회적 단절과 여기서 비롯된 죽음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청년 고립이 장기화돼 지금의 은둔·고립 청년들이 중·장년이 되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도 해법을 찾기 어려울 거예요”라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광주광역시는 2019년, 부산시는 지난해 6월에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를, 서울시는 지난해 12월에 고립청년 지원조례를 만들었다. 윤석열 정부도 국정과제로 은둔형 외톨이를 포함했지만 아직 기초 조사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청년에 대한 정의도, 은둔에 대한 기준도 제각각이다. 유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의 정의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인데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도 부족해요”라고 말했다. 안무서운회사에서 운영하는 은둔고수 양성 프로그램도 모집 인원의 몇 배수가 넘게 지원자가 몰린다. 하지만 예산과 여력이 안 되니 대부분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승규 대표가 5년간 은둔하던 시절 방 모습. 유승규 제공
식물 덕후와 꽃집 사장님이 만나면 이 대표는 정부 지원책이 단순히 이들을 상담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들이 가진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어른 세대는 모든 면에서 보통 이상인 제너럴리스트여야 성공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덕후적 기질이 있는 사람은 그걸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유 대표도 이에 동의했다. “방에서 10년을 있었다면,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에요. 그 경험이 10년 축적된 거예요. 재해석이 필요해요.” ‘두더지가 땅굴을 파듯’이라는 속담처럼 은둔형 외톨이도 어디 한 분야에선 오랜 시간 무언가 해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씨즈는 은둔·고립 청년의 덕후 기질을 관계 회복과 취업으로 풀어내려고 고민하고 있다. 일명 세대가 연대한 ‘서로돌봄 서클’. 예를 들어 식물 덕후 청년과 꽃집 사장님이, 책 덕후와 서점 주인이 만나는 식이다. “취향을 함께하는 모임 덕에 관계가 회복되고 결국엔 직업적 자기탐색의 과정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해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상대적으로 친숙한 은둔·고립 청년들과 정보기술(IT)기업의 연결도 고민한다. 그 길목엔 두더지땅굴이 있다. “은둔 당사자들이 사이트에서 가장 기대하는 건 3355 프로젝트예요. 세명 이상의 두두 멤버가 다섯번 이상의 만남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 활동비를 지원하는 거예요. 그만큼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오쿠사)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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