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이 함께 쓰고 있는 서울 서초구 법원청사 전경. 연합뉴스
회사의 징계에 불복해 소송 중인 직원에게 사내 지침을 어겨 가면서 사실상 대기발령 상태를 계속 유지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윤강열)는 최근 ㄱ아무개씨가 ㄴ은행 쪽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ㄱ씨는 브로커에 의한 사기 의심 대출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2017년 7월 인사대기 조치를 받은 뒤, 정직 3개월과 변상금 1억8000만원을 부과받았다.
이후 ㄱ씨는 “징계처분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징계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징계처분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ㄱ씨 주장을 대체로 받아들여 ㄴ은행 쪽이 근거로 든 징계사유 6가지 가운데 한 건만 인정된다며 징계를 취소했다. ㄴ은행은 남은 한가지 징계 사유를 근거로 다시 감봉 처분을 했고, ㄱ씨는 다시 징계처분 무효확인소송을 냈는데 1·2심에서 패소하고 현재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되고 있다.
ㄱ씨는 이 소송들과 별도로 부당한 징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ㄴ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직과 감봉 처분으로 인한 임금 감소분과 잘못된 대기발령 기간 동안 줄어든 임금 차액 등을 보전해달라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징계에 절차적 하자나 불법행위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정직 3개월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ㄴ은행이 이미 법원에 공탁한 점을 고려해 ㄱ씨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ㄱ씨가 대기발령 및 직무 미부여 기간에 받지 못한 급여·명절 상여금·성과보상금 등 약 6400만원을 ㄴ은행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ㄴ은행의 인사관리지침에 따르면 대기발령은 최대 1년6개월인데 ㄱ씨의 경우 최초의 대기발령일인 2017년 7월3일 이후 2년 넘게 대기발령과 대기발령에 준하는 보직제한 처분이 이어지고 있었다. ㄴ은행 쪽은 현재 감봉 징계처분에 대한 소송이 계속 진행 중이며,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 지점장 역할을 맡기엔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을 정도로 부당하게 장기간 그 직위에 상응하는 근로 제공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서 정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위법·무효로 봐야 한다”며 “각 소송은 징계 처분에 대한 ㄱ씨의 정당한 불복 절차이므로 소송이 장기간 계속 중이라는 사정만으로 보직제한 조치를 유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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