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국가손해배상 및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이 지난 2009년 쌍용차사태 진압 당시 국가 폭력이 있었음을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위원회가 인정하고 국가손배 취하를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며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트라우마 진단서 제출과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저는 2009년 이후 하루하루가 벌처럼 느껴집니다. 형사처벌도 모자라 13년이 넘도록 수십억원 소송에 정신적으로 고통을 감내했고, 남은 생을 트라우마와 싸우며 보내야 합니다. 지금 소송이 취하되지 않으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남은 정년 동안 벌어도 못 갚을 빚을 지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쌍용자동차 노조 조합원 김정욱씨)
지난 2009년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파업했다가 경찰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며 경찰에 소송 취하를 거듭 촉구했다.
쌍용자동차 국가손해배상 소송 피고 당사자들은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그 자체로 ‘국가폭력’”이라며 “13년째 지속된 재판은 노동자들에게 장기간 정신적 고통을 안기고 있다”고 밝혔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5월 회사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자, 경기 평택시 쌍용차 생산공장을 점거하고 그해 8월까지 77일간 파업을 벌였다. 정부가 대규모 경찰력을 투입해 파업을 진압한 뒤, 회사와 국가(경찰)는 파업 참가 노동자 67명에게 각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은 파업 당시 크레인, 헬기 등의 장비가 파손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소송은 지난 2016년 대법원 상고 후 장기 계류 중이다. 2심에서 인정된 배상액(약 11억3천만원)에 지연 이자까지 포함하면 쌍용차 노동자들이 배상해야 할 금액은 현재 약 29억2천만원이다.
기자회견에서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대법원 소송이 길어지며 당사자의 고통이 상당히 심했다”고 말했다. 쌍용차지부는 지난 3월 조합원들에게 트라우마 집단진료를 받아보자고 제안했고, 그 결과 지난 3∼7월에 소송을 제기당한 조합원 67명 가운데 24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21명)와 ‘우울장애’(3명)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파업과 관련한 정신적 충격과 소송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이들의 증상이 악화했다고 진단하고, 1년 이상의 정신과적 전문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보였다. 이들의 법률대리인은 이날 오전 대법원에 24명의 진단서와 손배소 진행 중에 숨진 2명의 사망진단서를 제출했다.
앞서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이 쌍용차 파업 당시 테이저건 등 대테러장비를 사용한 것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경찰에 이에 대해 사과하고, 쌍용차 조합원 등에게 낸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2019년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쌍용차 조합원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임금과 채권에 제기한 가압류는 모두 취하했다. 그러나 손해배상 소송 자체는 취하하지 않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합원 채희국씨는 “대법원 판결로 압류가 시작된다는 상상만으로 생활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건강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고 있다”며 “경찰은 사과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소 취하를 결단해주길 요청드린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쌍용차 조합원들은 경찰청 민원실로 면담요청서를 제출했다. 경찰청은 <한겨레>에 “1·2심에서 일부 승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기존과 동일한 입장을 밝혔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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