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SK케미칼 임직원 처벌 호소 피케팅. 연합뉴스
검찰 수사 등에 대비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증거를 은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검찰 출신 박철(56) 전 에스케이(SK)케미칼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는 30일 증거인멸·은닉과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양정일 전 에스케이케미칼 법무실장(전무)도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들은 검사와 판사 출신이다. 이 밖에 에스케이케미칼 임직원 3명에게도 징역 10개월~1년6개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박철 전 부사장 등 피고인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않고 에스케이케미칼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은폐했으며, 재판 과정에도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다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박 전 부사장 등은 에스케이케미칼 전신인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한 당시인 1994년 서울대에 의뢰해 진행한 유해성 실험 결과를 은닉한 혐의를 받았다. 에스케이케미칼은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에 의뢰한 흡입독성 실험에서 안전성이 확인돼 제품을 출시했다고 밝혔으나, 당시 연구팀이 작성한 보고서는 “안전성 확보를 위해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유공은 실험이 끝나기도 전부터 시중에 제품을 판매했고, 추가로 안전성 실험을 거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광범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실이 드러난 뒤 언론·국회 등이 해당 보고서를 요구하자, 이들은 자료가 없다는 취지로 대응했다.
이 밖에도 박 전 부사장 등은 회사에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자료를 폐기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에스케이케미칼은 박 전 부사장을 중심으로 법무·홍보 등 담당자들이 모인 테스크포스를 통해 당시 현안에 대응했는데, 이들은 조직적으로 관계된 문서를 삭제하고 노트북과 이동식저장장치 등을 포맷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수사에 대비한 정황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박 전 부사장과 양 전 실장, 법인 에스케이케미칼, 에스케이이노베이션 등의 가습기살균제특별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 법은 사업자가 환경부 조사에 거짓된 자료나 의견을 제출하면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2017년 시행 이후 관련 첫 기소 사례였다.
앞서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에스케이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 등 임직원 13명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중이다. 현재까지 인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총 4350명에 이른다. 박 전 부사장과 양 전 실장은 현재 다른 에스케이 계열사의 임원을 맡고 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