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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업체 로비 유죄’ 받은 퇴직 공무원, 그래도 연금 못 깎는다는 법원

등록 2022-09-05 07:00수정 2022-09-06 02:18

제주도 3급 퇴직 직후 토목업체 취업
제주시·서귀포시 공무원 전방위 로비
징역형 확정 연금 깎이자 ‘적반하장’ 소송
법원 “재직 중 범죄 아냐” 무자르듯 판단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퇴직 후 업체 로비 창구 구실을 하다 징역형이 확정된 전직 고위공무원의 퇴직수당과 연금을 환수·감액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평소 친분이 있던 업체 대표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고, 퇴직 직후부터 관급공사 알선을 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지만, 법원은 무 자르듯 ‘현직에 있을 때 이뤄진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을 깎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2012년 6월30일 제주특별자치도 시설직 고위공무원(지방부이사관·3급)으로 승진과 동시에 명예퇴직한 ㄱ씨는 곧바로 한 토목업체 부회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퇴직 한달여 전 ㄱ씨는 해당 토목업체 대표로부터 ‘현직에 있을 때 알던 제주시, 서귀포시 공무원들을 상대로 공사 선정·자재 납품 등을 알선·청탁해 주면 급여 등 명목으로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터였다.

이후 ㄱ씨는 시 관급공사를 담당하는 국장·과장·계장·직원 등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했고, 토목업체는 2012~15년 제주시·서귀포시 발주공사 6건(25억4300만원 상당)을 수주했다. ㄱ씨는 또 2014년 1~2월 제주시가 발주한 교량공사 자재 수주를 위해 담당 과장과 직원에게 각각 1천만원과 500만원을 주기도 했다. ㄱ씨는 이 과정에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현직 공무원들하고 같이 살자고 하는 것이다. 상급자들에게도 모두 인사를 했다”고 말한 사실이 이후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ㄱ씨는 알선 등의 대가로 2012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토목업체로부터 3억1380여만원(법인카드 7000여만원 및 2014년 공무원 로비자금 2500만원 포함)을 받았다. 2018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 및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ㄱ씨는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아 그 형이 확정됐다.

공무원연금공단은 곧바로 ㄱ씨에게 지급한 퇴직수당 및 퇴직연금 6738만원을 환수하고, 앞으로 퇴직연금을 절반으로 줄인다고 통지했다. 공무원 재직 중 사유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경우 환수·제한한다는 공무원연금법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에 ㄱ씨는 환수한 돈을 둘려주고 퇴직연금 감액 처분도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다. “징역형이 확정된 뇌물공여죄(2014년)와 알선수재죄(2012년 7월~2014년 4월)는 모두 퇴임(2012년 6월30일) 이후의 범죄”이기 때문에 공무원연금법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ㄱ씨 손을 들어줬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형사판결의 범죄사실 등을 보면 ㄱ씨가 퇴직 전인 2012년 5월 업체 대표를 만나 영입 제안을 승낙했으나, 당시에 대표로부터 구체적인 알선을 청탁받았다거나 그 대가로 금품제공을 약속받았는지 여부에 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형사판결에 기재된 2012년 6월 경 서귀포시에서 발주한 공사 역시 공사 계약 체결일과 착공일(2012년 6월11일~2013년 2월6일)을 고려할 때 ㄱ씨의 공무원들에 대한 청탁이 (퇴직 전인) 2012년 6월에 있었음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 ㄱ씨가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기 시작한 것은 (퇴직 후인) 2012년 7월 이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상 형사재판에서 확정된 사실 판단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행정소송에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실관계 인정 여부는 재판부 재량이다. 이번 소송에서 연금공단이 ㄱ씨 행위가 재직 중 발생한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입증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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