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마포구의 문화공간 너나들이에서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 주최하는 ‘MZ세대, 열여덟 어른의 내일을 말하다’ 청년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 아동) 당사자인 ‘열여덟 어른’ 손자영 캠페이너와 미디어∙사회복지 전공 대학생들이 모여 미디어가 자립준비 청년 캐릭터를 다루는 방법과 사회 인식 개선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보육원에서 나온 지 8년째인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손자영(26)씨는 대학에 다니기 전 회사에서 생산직 일을 했다. 매번 ‘추석에 어디 가냐’는 질문을 받으면 괜시리 위축돼 ‘근무 하겠다’고 답했왔다. 하지만 이번 추석 손씨는 ‘가족’을 만나러 경북 구미에 간다. 보육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음식도 만들어 먹고 즐겁게 놀 계획도 짜 놨다. “보육원에서 가족처럼 지냈으니까. 다들 바쁘게 지내도 명절에는 매번 만나려고요.”
자립 7년차 신선(29)씨의 이번 추석도 특별하다. 신씨는 “코로나도 있었고 지금까지 명절은 거의 혼자 보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시설에서 나와 자립한 형이 결혼하게 되면서 연락이 닿아 처음으로 함께 명절을 보내게 됐다”고 했다. 손씨와 신씨는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아름다운재단 캠페인 ‘열여덟 어른’의 보호종료 당사자 캠페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일 <한겨레>와 만난 이들은 지난달 광주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자립준비청년들을 보육시설 출신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자립준비청년임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꾸며 이번 추석을 보란듯이 즐겁게 보내겠다고 한다.
손씨는 광주 사건에 대해 “당사자 커뮤니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립준비청년들 소식을 종종 들을 때가 있다. 최근 연이은 보도를 보고 이런 사건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려 한다”고 했다. 신씨도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들은 너무나 많다. 굳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자립 후에 고립되거나 이렇게 도움을 구할 사람 한 명조차 없어 힘들어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의 문화공간 너나들이에서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 주최하는 ‘MZ세대, 열여덟 어른의 내일을 말하다’ 청년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 아동) 당사자인 ‘열여덟 어른’ 손자영 캠페이너와 미디어∙사회복지 전공 대학생들이 모여 미디어가 자립준비 청년 캐릭터를 다루는 방법과 사회 인식 개선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아름다운재단 제공
그러나 이들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고립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식으로만 자립준비 청년 당사자들을 바라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3일 미디어가 자립준비 청년 당사자 캐릭터를 다루는 시각과 사회 인식 개선에 관한 청년 토론회를 진행한 손씨와 신씨는 자립준비 청년들의 극단적 선택을 다루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신씨는 “관련 기사들이 처음 나왔을 때 경제적으로 어렵고 고립된 상태에서 (극단 선택을 했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왔는데, ‘과연 그런 이유뿐이었을까’ 싶었다. 경제적, 심리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만 하면 해결책도 단순히 지원을 늘리는 데 그칠 수 있다
. 그 친구 입장에서 ‘자립준비 청년’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그래도 괜찮아. 넘어져도 다시 한번 무릎 펴고 일어나면 되지’ 응원해 줄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으면 과연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라고 말했다.
자립준비 청년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달 정부는 2023년도 예산안에서 자립준비 청년에게 5년간 월 40만원(기존 30만원) 자립수당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서울시도 자립준비 청년의 심리·정서 지원 대책을 내놨다.
자립준비 청년들은 이러한 지원책에 더해 “자립준비 청년임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돼야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했다. 손씨는 “단순히 예산만 늘리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내가 보육시설에서 자랐다’고 맘 편히 말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사실 자립준비 청년들이 대학생일 때 장학금, 생활비 등 다양한 경제적·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광주의 자립준비 청년도 그렇고, ‘왜 당사자들이 이런 자원들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솔직하게 자신의 사정을 터놓지 못한 게 아닐까 싶어요. 주변의 차별과 혐오 시선이 걱정돼 ‘혼자 다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정부 통계를 보면 2016~2020년 5년간 보육시설을 나온 자립준비청년은 1만2857명이다. 두 사람은 이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응원하는 누군가가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보육원 친구들은 제가 캠페이너로 활동하는 걸 보고 ‘옛날엔 보호종료 아동인 걸 감추기 위해 거짓말 100번 했다면 이젠 한 10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해요.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지지해주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차별과 혐오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손자영씨)
“매번 명절만 되면 ‘명절에 외로운 보호종료 청년들을 만나봤습니다’는 식의 언론 보도들이 나와요. 언론도 ‘외로움’, ‘고립’ 식의 보도보다 ‘잘 지내고 있니’ 같이 따뜻하게 안부를 물어봐 주는 식으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까요?”(신선씨)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의 문화공간 너나들이에서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 주최하는 ‘MZ세대, 열여덟 어른의 내일을 말하다’ 청년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발제에 나선 신선 캠페이너. 아름다운재단 제공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