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명의로 된 통장이 자금세탁에 도용됐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할 겁니다.”
낯선 목소리가 스스로 검사라고 밝히며 말한다. 구속이라는 말에 대뜸 겁날 수 있지만, 뉴스를 많이 접한 사람은 보이스피싱 가능성도 떠올릴 것이다. 내 마음을 읽은 듯 검사는 못 믿겠으면 금융감독원이나 은행에도 물어보라고 한다. 누리집에서 찾은 금감원과 은행의 공식 연락처를 확인해 ‘크로스체크’(교차 확인)를 했더니, 실제로 명의가 도용된 게 맞는다고 한다. 그래도 당신은 협조하라는 검사 말을 무시하고, 계속 보이스피싱을 의심할 수 있을까?
경찰은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하지 않기 위해 오랜만에 추석 명절에 만난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에 담긴 인터넷 주소 링크를 누르지 말라”고 한마디 건네달라고 당부했다.
요즘 보이스피싱을 저지르는 범죄조직은 더이상 중국동포의 어눌한 발음으로 묻지 않는다. 검사 역할을 담당한 범죄 조직원은 고압적인 말투로 당황한 피해자의 심리를 지배한다. 은행원 역할을 맡은 조직원은 특유의 높은 톤으로 “검사에게 협조하라”고 완전히 믿게 한다. 정신을 차리고 ‘크로스체크’를 해도 당한다는 게 진화한 범죄수법의 핵심이다. 최근 한
의사가 이런 수법으로 41억원 규모의 피해를 당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인터넷 주소 링크를 누르지 말라”는 한마디를 한 뒤 부모님 휴대전화에 악성 앱이 깔려 있지 않은지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해 한번 확인해드려도 좋다. 속칭 ‘미끼 문자’로 불리는 메시지의 수상한 링크를 눌렀다가 설치된 악성 앱에 내 개인정보가 다 넘어갈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검찰·경찰·금감원 등에 연락을 해도 전화를 가로채 범죄조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죄조직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도 이런 기관들의 정상 전화번호로 표시되는 기능도 있다.
유지훈 경찰청 금융범죄수사계장은 “일단 악성 앱이 깔리면, 절대 속을 것 같지 않은 분들도 대부분 보이스피싱에 걸린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찝찝한 마음에 여러 기관에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 등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는 것이 확실하다. 경찰은 현금 전달 및 대출문자 의심 등 보이스피싱 예방 10계명을 알리는 동시에 “누구든 피해자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 절대 방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