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적용한 제3자 뇌물죄 기소 여부와 유무죄 판단을 가르는 것은 ‘부정한 청탁’과 ‘기부채납’이라는 키워드가 핵심이다. 법조계에서는 두산건설이 성남에프시에 낸 광고 후원금 성격을 검찰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기업 민원 처리의 대가라는 점이 인정될지가 관건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 제3자 뇌물죄, 핵심은 ‘부정한 청탁’
경찰은 지난 13일 보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두산건설로부터 용도변경과 관련한 청탁을 들어주는 대신 성남에프시 후원금을 내도록 했다”며 이 대표에게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적용했다. 이 대표는 2015년 두산그룹이 소유한 분당구 정자동 병원 부지 3천여평을 상업용지로 변경하고 성남시가 기부채납 받을 면적을 전체 부지의 15%에서 10%로 낮춰줬다. 줄어든 5%에 해당하는 금액 50억원은 이 대표가 구단주로 있던 프로축구단 성남에프시에 광고 후원금으로 내도록 했다. 경찰은 두산건설이 성남에프시에 낸 후원금이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바탕이 된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 대표가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니 제3자 뇌물제공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이다. 후원금을 낸 두산건설 전 대표에게는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지난 16일 두산건설과 성남에프시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대표에게 적용된
제3자 뇌물제공 혐의는 공무원 본인이 뇌물을 받은 게 아니더라도 직무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이 전해지도록 한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한다.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일을 한 경우라면 폭넓게 처벌하고자 하는 것이 그 취지다. 여기서 ‘부정한 청탁’이란 직무집행을 대가관계와 연결시켜서 그 직무집행에 따른 대가를 주고자 하는 청탁을 말하고, 명시적 의사표시뿐만 아니라 묵시적 청탁도 가능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
16일 검찰이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경기도 성남시 성남FC 클럽하우스를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 경찰 보완수사, ‘묵시적 청탁’ 얼마나 뒷받침할까
경찰은 불송치 결정했던 1차 수사 때와 결론이 뒤바뀐 이유를 설명하면서 “유의미한 진술과 함께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사건 송치 사흘 만에 다시 압수수색에 나선 배경 역시 ‘부정한 청탁’을 좀 더 탄탄하게 입증하겠다는 취지다. 성남시와 두산건설 모두 ‘성남에프시 광고 후원금과 용도변경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는데, 경찰과 검찰은 용도변경 관련 협상 단계에서부터 성남시와 두산건설이 후원금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제3자 뇌물제공은 결국 공무원에게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보완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 등이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부정한 청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구조로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됐던 ‘국정농단 사건’을 보면, 대법원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해 유죄 취지 판단을 한 바 있다. 당시엔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후원한 것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문제를 잘 봐달라는 뜻이었는지가 쟁점이었다. 두 사람은 청탁의 존재를 부인했고 하급심에서는 부정한 청탁에 대한 판단이 엇갈렸으나, 대법원은 “묵시적 청탁만으로도 부정한 청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형법)는 “두산건설이 성남에프시에 후원금을 준 것과 토지에 대한 용도변경 허가가 난 것이 부정한 청탁이라는 고리로 인과관계가 인정될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 성남시-성남FC 관계에 따라 광고 후원금 성격이 달라진다?
일각에서는 성남시와 성남에프시 관계가 어떻게 인정되냐에 따라 성남에프시 광고 후원금 50억원의 법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성남시와 성남에프시가 별개라면 후원금이 제3자 뇌물일 수 있지만, 둘이 하나의 경제 단위로 받아들여지면 광고 후원금은 기부채납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성남에프시가 받은 광고 후원금은 불법적인 현금 기부채납이 될 수는 있지만, 제3자에게 전해진 뇌물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성남에프시는 원래 ‘성남일화’라는 이름으로 통일교 계열의 통일그룹이 운영하던 축구단이었다. 2012년 9월 문선명 통일그룹 총재가 별세한 이후 통일그룹이 스포츠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재정위기를 겪었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는 성남시 시민구단 창단을 추진하던 상황이었는데, 성남시는 타당성 연구용역을 거쳐서 성남일화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성남일화는 2013년 10월 성남에프시로 이름을 바꾸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구단주인 시민구단으로 재창단됐다. 현재까지 성남시 소유로 운영되고 있다. 성남시는 해마다 100억원 상당의 성남에프시 운영자금을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성남에프시가 공적 성격을 가진 성남시 산하 공공기관의 일종이기 때문에, 성남시와 성남에프시가 하나의 경제 단위로 여겨진다면 성남에프시에 전해진 광고비 50억원도 성남시가 받은 기부채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법조인은 “제3자 뇌물죄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제3자에게 이익을 귀속시키는 것이지만, 기부채납은 인·허가를 낸 쪽이 기부를 받는 것이다. 성남시와 성남에프시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느냐에 따라서 돈의 법적인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지방자치단체장이 건설사 기부채납 건으로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된 전례가 검찰과 법원의 주요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부채납을 받은 ‘지자체=제3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여기서도 부정한 청탁 여부가 유무죄를 갈랐다. 김두겸 현 울산시장은 울산 남구청장으로 있을 때 아파트 공사 인·허가와 관련해 건설사에게 5억원 상당 누각을 지어 기부채납하도록 했다는 혐의로 2010년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됐다. 1심 유죄, 항소심 무죄, 2011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결론 났다.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을 받고 지자체에게 금품을 제공하게 했다면, 공무원 개인이 금품을 취득한 경우와 동일시할 수는 없으므로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구청과 건설사 협의 과정 등을 볼 때 적법한 기부채납이 아닌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6일 검찰이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서울시 강남구 두산건설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
■ 네이버 등 성남 관내 5개 기업은 무혐의
한편 경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5개 성남시 관내 기업에 대해서는 1차 수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분했다. 제2사옥 건축 허가라는 현안이 성남시와 얽혀 있던 네이버, 판교에 백화점을 새로 연 현대백화점을 비롯해 알파돔시티, 분당차병원, 엔에이치(NH)농협은행도 적게는 5억에서 많게는 30억여원의 후원금을 성남에프시 쪽에 전달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불송치 결정을 하면서 각 기업들이 건축 인허가 등과 관련된 현안 민원이 있었고 성남에프시에 광고비를 지급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현안 민원 처리의 대가로 광고비를 후원했다고 볼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발견치 못했다는 이유를 밝혔다. 제3자 뇌물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법조인은 “이 대표 쪽에서는 똑같이 현안이 걸려있는 네이버 등에 대한 판단과 두산건설 판단이 왜 다르냐고 다툴 수 있다”고 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